▶ ■송년기획-사양업종 지키는 한인들 <5> 구두수선 김청길씨
14년째 플러싱에서 구두수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청길씨가 여성 부츠의 굽을 수리하고 있다.
플러싱 메인스트릿서 14년째 한길
중국산 싸구려 밀려와 일감 줄어
보스턴 등 먼 곳서 찾아올 때 보람
사방이 한자 간판으로 빼곡히 둘러싸인 퀸즈 플러싱 메인스트릿. 언제부턴가 제2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리는 이곳을 걷다가 37애비뉴를 만날 쯤 되면 정겨운 한글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구두 수선.’ 중국어 간판들 사이로 외롭게 버티고 있는 한글간판이 사양사업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한인 구두 수선공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듯 보였다.
간판을 따라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1평 남직한 좁은 공간에서 한 노신사가 망치를 들고 연신 구두 굽을 두드리며 수선에 열중하고 있었다. 올해로 14년째 구두수선 한길을 걷고 있는 김청길(70)씨.
때마침 가게를 찾은 한인여성이 맡긴 헌 구두가 굳은살이 베긴 김씨의 손을 거치자 20분 만에 새것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씨가 구두수선 가게를 운영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평소 자주 들렸던 가게에서 구두 고치는 일을 어깨 너머로 배운 그는 지난 1999년 주인의 은퇴 소식에 정수기 판매를 그만두고 지금의 가게를 인수했다. 어려서부터 부츠를 사서 모으는 것이 취미였을 정도로 신발을 좋아했던 그였기에 처음부터 구두 수선은 천직처럼 느껴졌다.
“부츠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구두수선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25년 전에 구입한 부츠도 제가 고쳐서 아직도 신고 다녀요. 자연스럽게 이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됐죠.”
가게를 막 시작할 때만해도 구두를 쌓아 올릴 정도로 일이 많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중국에서 싼 값의 구두들이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손님들이 줄기 시작했다.
“고치는 가격이나 새로 사는 가격이나 똑같은데 누가 수선을 맡기겠어요. 그냥 새 구두를 하나 사는 게 낫죠. 정말 비싼 구두나 자신이 아끼는 구두가 아니면 이제 수선하러 안옵니다.”
특히 구두를 많이 안 신는 여름에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 김씨가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더욱 줄어들어 버린다. “그래도 아직까지 보스턴이나 펜실베이니아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구두장이로 살아온 인생에 보람을 느낍니다. ”새로 산 구두나 다름없네요. 고맙습니다“라는 이 말 한마디가 제가 이일을 계속하는 원동력이죠”
은퇴할 때가 한참 지난 칠십의 나이에도 아직도 구두 망치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더 이상 이 일을 이어줄 후배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제가 마지막이 될 겁니다. 플러싱에서 구두수선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10년 전 젊은이 2~3명이 구두수선을 배우겠다며 왔지만 며칠 못 버티고 그만 뒀죠.”
이제는 더 이상 배우려하는 사람이 없는 구두 수선이지만 그는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구두 수선은 무엇보다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입니다. 제가 은퇴할 때 쯤 구두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구두방 일을 이어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마치 14년 전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조진우 기자> 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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