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장>
빛 좋던 가을이 남긴 탄식처럼 빈 가지의 속살 깊숙이 품고 있던 눈물이 얼음 꽃이 되어 빛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많은 것을 계획했고 기도하며 소망 했었습니다. 천지가 개벽하여 내 편이 되어 주기를 바라던 철부지 젊은 시절 같은 마음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기회가 온다면 오만하게 거절하지도 못 할 거라는 자신을 알기에 조금은 스스로가 무력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계절이 바뀌었을 때 아차 하는 아쉬움을 느끼던 하루하루가 쌓여 일 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늘 무료한 날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어처구니없이 닥쳐오는 크고 작은 사소한 일에 온갖 감정으로 대응하다 보면 몸은 지치고 마음은 온통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그래도 세월의 무게가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쌓인 덕에 그만하면 감사하다고 여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서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때의 부모님처럼 미미한 자신의 존재가 아집으로 가득찬 편견 덩어리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마주 했을 때의 당황과 분노에 때로는 외로운 투사가 되어 맞서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온몸으로 맞선 상황이나 항거불능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나 지나고 보면 눈물겹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이는 채우느라 한 세월을 보내고 다른 이는 가진 것을 비우느라 모진 인내를 감당하는 것을 보며 감사의 계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에서 바라보는 죽음은 사선을 넘어서야 하는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겠지만, 죽음에서 보면 삶은 한낱 눈물겨운 몸놀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뒤돌아 선 다음에야 느끼는 후회처럼 늘 종종걸음 치며 조바심으로 살아왔던 지난날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서 그런지 담 너머에 사는 죽은 자의 묘비가 오늘은 이웃으로 보입니다.
뒷산의 텅 빈 숲에는 첫눈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멋쩍은 눈이 내렸습니다. 겨울은 그렇게 와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대나 과거에 대한 회한보다 좀 더 뜻 깊은 삶을 살아내고 싶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보다는 무심코 지나쳤던 이웃들에게 내밀지 못했던 소심함이 마음 한 구석에 시리도록 남아 있습니다.
배려나 나눔 같은 단어들에 나이가 들어도 인색한 것은 올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삶에 미숙하여 주변과 이웃들에게 무심했음을 고백합니다. 삶에서 돌연히 만나게 되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에 휘말린 것도 예년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반복된 일에 대한 이력으로 때로는 한 쪽 눈을 감기도 하고, 많이는 피하기도 하며, 가끔씩 힘들면 멈추어 서서 심호흡을 하며 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12월이 끝나고 새해가 시작 되는 것은 겨울, 그 한복판에 새로운 동력이 필요해서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쉽게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말고 한 길로 걸어가라는 메시지로 이해하며 성급한 봄날을 꿈꿔 봅니다. 겨울의 한 복판에서 움츠려든 어깨를 펴고 또 다른 희망을 노래합니다.
지난 2년간 졸고를 너그럽게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했음을 느끼며 보내주신 사랑은 마음 깊이 담아 두겠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분들이 더 큰 희망과 기쁨으로 채우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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