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원과 해고는 쉬워지고 최저임금은 동결 혹은 인하되고…
▶ 경쟁력 회복과 고용 증진 명분 미국식 노동규정 자율화 확산 전 지역에 걸쳐 임금격차 심화
2008년 190만명의 포르투갈 노동자들이 집단협약에 의한 보호를 받았다. 지난 해 이 숫자는 30만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스페인 정부는 집단 감원 및 불공정 해고와 관련한 규정을 완화하고 임시직 연장 제한도 상당히 풀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최고 4년까지 고정계약에 묶일 수 있게 됐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은 최저임금을 동결했으며 그리스의 경우에는 최저임금이 무려 4분의1이나 줄었다.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유로화 평가절하가 힘든 상황이 지속되면서 많은 유럽국가들, 특히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유럽대륙 남방의 국가들은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보호 조치들을 급속히 폐지하고 있다.
독일의 앙헬라 메르켈 총리와 유럽위원회, 그리고 이들보다는 좀 더 미지근한 어조로 국제통화기금이 밝힌 이런 조치들의 명분은 경쟁력 회복과 고용 촉진, 그리고 국가 채무 변제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들에 따라 유럽사회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제네바에 있는 국제노동기구의 수석 경제학자인 레이몬드 토레스는 “현재의 변화 속도는 대단히 빠르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2차 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기에 유럽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둘러싼 논쟁의 대부분은 긴축재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는 노동자 보호막은 유럽의 사회계약에 아주 심대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파리 정치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장 폴 피투시는 “이런 추세는 사회적인 연대감뿐 아니라 불평등에도 재난에 가까운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 전역에 걸쳐 웰빙이 저하되고 있으며 그런 징후의 하나는 극단적인 정당의 등장”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유럽의 전략으로 현 시대의 특징이 돼 버린 임금 불평등을 완화시켜 온 노동시장 주체들의 역할, 즉 노조와 최저임금 등이 시험대 올랐다. 전 유럽에 걸쳐 불평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하면 아직은 덜 한 편이다.
그러나 수 십 년 동안 유럽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보호해 왔던 상대적 평등이 미국식의 노동규제 완화정책이 갈수록 널리 도입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에서는 노동시장에 정부가 거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서 그 대답은 ‘아니다’이다. UC버클리의 노동경제학자인 데이빗 카드는 “노조화 비율의 하락은 포르투갈의 임금 배분 격차를 급속히 확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의 새로운 정책적 움직임이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가장 두드러진 증거는 이런 정책을 일찍이 채택한 독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독일의 노동계 개편은 1990년대 초 독일 통일 이후 시작됐다. 생산성이 낮은 동독의 공장들은 서독의 임금체계로는 경쟁할 수 없음을 깨닫고 업계와 노조의 단체협약을 거부했다. 곧 서독지역 업체들도 이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면서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2000년 대 초 흔들리던 독일이 ‘유럽의 병자’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얻었을 당시 경쟁력 제고와 고용 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 보호막은 더욱 많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임금이 낮은 임시직들이 많이 생겨났으며 오늘날 독일 고용의 5분의1 이상이 이런 형태이다.
독일은 현재 이 같은 개혁의 빛나는 성공사례로 꼽힌다. 실업률이 5.2%에 불과한 수출 강국이다. 다른 서방국들은 독일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독일인들이 성공의 혜택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1991년 가장 부유한 독일인 상위 10%가 가져간 세금 전 부는 26%였다. 하지만 2010년 이들이 차지한 부는 31%로 늘었다. 같은 기간 하위 50%가 차지한 부는 22%에서 17%로 떨어졌다. 불평등이 심화된 것이다.
카드 교수가 언급했듯 1996년부터 2009년 사이의 독일의 임금격차 심화는 미국의 1980년대와 유사하다. 이 시기 미국의 임금격차는 길드시대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커졌다. 독일의 임금 불평등은 지난 2년 사이 파트타임과 저임금 일자리 수가 안정되면서 약간 완화되기는 했지만 10년 전보다는 여전히 높다.
독일의 전략이 다른 유럽국가들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의 수출은 급증했지만 내수는 정체상태이다. 이것이 저임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코넬대학 노동자 연구소 책임자인 로웰 터너는 단일시장을 추구하는 유럽연함과 유럽대륙의 뿌리 깊은 평등의식 사이에는 항상 긴장관계가 존재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자 지금 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 정부들은 잠시 노동자들을 보호했지만 이제 균형은 사회적인 유럽에서 다른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도 있다. 올 초 총선에서 메르켈의 기민당은 사민당과 연정을 맺었다. 이에 따른 협약으로 독일은 처음으로 8.5유로의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이는 미화 11.50달러에 해당한다. 이런 독일의 조치는 외국 상품에 대한 독일의 수요를 늘려 다른 국가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을 보인다. 그러나 과연 독일이 이런 조치를 취할 것인지 낙관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있다.
이 보다는 남유럽 국가들의 노동시장은 미국식을 뒤따라 갈 가능성이 점차 높아 보인다. 한 경제학자는 “유럽이 점차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 이것은 유럽인들이 바라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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