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 (수필가)
늘 습관대로 익숙한 곳에서 일상을 잠시 비틀어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항상 설레기 마련이다. 그 설렘만 앉고 홀연히 떠나가기엔 만만치 않은 현실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2년 반 만에 이러저런 핑계로 봇짐을 꾸렸다. 두주간의 짧은 여정-반나절 이상 날아가야 하는 하늘길이 이즈음엔 만만하지 않지만 몸살기처럼 쉽게 떼어내지 도 못 하고 온 몸으로 촉촉이 젖어 올라온 향수를 달래기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개인적인 핑계가 지금 떠나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소중한 친구들의 우정은 이번에도 곰삭은 묵은 지처럼 구수하고 넉넉한 각자의 뚝배기들을 들고 나와 맞아준다. 서로의 스토리 는 다르지만 마음의 빗장을 하나씩 풀어 놓다 보면 솔직해져서 좋고, 이해해 줘서 고맙고 같이 변해 가고 있어서 넙죽넙죽 공감을 하게 된다. 속살을 드러내 놓고 손뼉을 마주치며 웃다 보니 어느새 찌그러져가는 같은 배에 올라앉아 서로를 위해 번갈아 가며 노를 젓고 있는 같은 마음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효소처럼 온 몸에 번져오는 친구들의 시공을 초월한 순수해진 웃음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숨어있던 무형의 짐들을 덜어내며 용감하게 떠나온 자 만의 여유를 만끽한다. 때로 침묵하는 순간에도 눈빛으로 서로를 읽어 가는 무언의 대화는 더 큰 울림으로 진솔하게 마음 판을 두드린다.
지인 앞에서 아직도 나는 수줍은 소녀가 되고 중년 넘은 고루한 학생이 되어 다소곳이 두 손을 무릎 위로 모은다. 켜켜이 쌓아놓은 지난 이야기들을 복습이라도 하듯이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누렇게 변해 버린 희미해진 기억마저도 지금에 이르러 보니 새로운 시작처럼 진지해진다.
이제 서로에 대한 존경보다 친구처럼 세월을 엮어 가는 동료가 되어있고 ,되감을 수 없는 시간을 꼭 붙잡고 남은 여정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고 생각에 이르니 마음 한편이 뭉클해진다. 컬컬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맑은 골짜기 옹달샘처럼 언제라도 달려가면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반겨 주고 기꺼이 품어주는 옛정이 감사하고 그래서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마음에 거듭거듭 새겨 놓는다.
또 다른 반가운 얼굴들...친지들을 방문하고 손목을 맞잡을 땐 애틋하게 밀려오는 그 정이 부뚜막에서 막 쪄 내온 뜨끈한 감자떡처럼 목구멍에 달라붙어 넘어 가질 않는다.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오는 비워져있던 공간을 서로 더 큰 것으로 얹어 주며 사랑을 몇 번이고 확인 한다. 가족은 잊어버릴 만하면 한번 씩 나와서 얼굴도 보고 바람도 쐬고 가라고 변변하지 못한 나에게 비상구 까지 마련해 주는 친구들 또 지인과 가족들의 그 정과 사랑을 난 꼭 지키고 싶다.
여행자는 제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고 하는 이치를 다시 깨닫는다. 오선지위에 쉼표처럼 잠간 숨을 고르며 저 하늘의 무지개도 만나고 냇가에 몸을 숨긴 조약돌의 외침도 들어본다. 불협화음으로 삐거덕 거리던 이탈된 음을 찾아서 빼어내고 채워 넣으며 새로운 하모니로 만들어가는 다시 부르는 내 노래를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인생을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서는 뛰다가도 때론 멈춰 서서 뒤 돌아보고 점검하는 쉼표 같은 시간이 여행이 아닐까?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이제 긴 여행을 준비한다.
이번 여행에도 설렘이 있고 더 큰 기대가 있지만 동행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도 따라 붙는다. 하지만 바람도 소망도 켜켜이 꾸려 넣고 쓰다만 헌 것들을 저만치 밀쳐두고 새 것으로 새 마음으로 단단하게 동칠까 지난 여행길 나누었던 따뜻한 차 한 잔의 감사를 보낸다.
때론 가는 길에 비바람처럼 무표정하게 빨려 들어가던 살아남은 자 들의 비장함도 체온으로 담아 오지 않았던가. 이제 다시 떠나보자. 봇짐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들쳐 매고 365일 스케줄에 또박또박 적어내려 간다. 저 지금 여행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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