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획/ 갈 곳 없는 노인들
▶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사랑방 복지시설·여가활동 아쉬워
한인노인들이 파슨스 블러바드 소재의 맥도날드 한쪽 구석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새로운 기대를 품은 새해가 시작됐지만 희망이 멀게만 느껴지는 한인 노인들이 많다. 한인 이민사회도 갈수록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인들은 늘고 있지만 이들이 여가를 찾고 노년의 보람을 찾을 만한 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인사회가 직면한 ‘노인들이 설 자리’ 문제의 실태와 문제점, 대책을 점검해 봤다.
■실태=지난 2일 퀸즈 플러싱의 파슨스 블러바드에 위치한 맥도널드 매장에 경찰이 출동해 한인 노인 6명을 밖으로 쫓아내는 소동<본보 1월3일자 A3면>이 벌어졌다. 현장은 끌려가는 노인들의 강한 항의의 목소리와 손님을 경찰에 신고한 매장 측을 성토하는 또 다른 한인들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들도 “맥도널드의 신고를 받아 점주가 원하는 대로 일처리를 할 뿐”이라며 노인들을 어렵게 설득해 매장 밖으로 내쫓은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날 맥도널드 측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새벽 5시부터 노인들이 10시간 가까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바람에 다른 손님들이 앉을 곳이 없어 환불하고 나갈 정도였다”며 “수차례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구해도 이를 묵살해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부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매장에는 ‘20분 이상 테이블에 머무를 수 없다’는 안내 문구가 있었지만, 이날 쫓겨난 노인들은 매장 측으로부터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마다 1달러짜리 커피를 반복 구매하는 편법으로 사실상 테이블을 장시간 점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에서 이날 상황을 목격한 50대 한인여성은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노인들이 쫓겨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며 매장 측을 성토했다.
이날 쫓겨난 한인 노인들은 이후 맥도널드 매장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또 다른 노인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문제점=온갖 박대와 수모에도 한인 노인들이 맥도널드를 찾는 건 이들이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걸 방증한다. 물론 퀸즈 플러싱 일원엔 한인 노인들을 위한 시니어 센터가 다수 마련돼 있지만 일부 노인들은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과 다른 노인들과의 이질감 등을 이유로 꺼리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인은 6일 맥도널드에서 본보와 만난 자리에서 “무슨 시니어센터다, 노인회다 많지만 가면 오히려 더 늙는 기분이 들어 잘 찾지 않는다”며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친구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현재 뉴욕시에 분포돼 있는 한인의 숫자는 1만명 선. 전문가들은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시니어센터와 같은 공인된 기관이 아닌 곳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노인들 중에는 카지노행 버스에 오르기도 하고, 또 다른 부류는 소규모로 운영되는 불법 사설 도박장을 찾아 더 큰 사회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대책=전문가들은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시설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좌 개설이나 무료 식사 대접과 같은 프로그램의 운영도 중요하지만, 이를 원치 않는 노인들의 숫자도 상당한 만큼 이들이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한인봉사센터(KCS) 김광석 회장은 “맥도널드 사태를 언론 보도로 접한 이후 긴급 회의를 소집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며 “현재까진 맥도널드와 같은 일종의 카페를 KCS 내에 만들어 노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여러 복지단체들이 봉사활동과 같은 소일거리를 부여해 노인들에게 능동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보와 만난 또 다른 노인 역시 “어디가면 공짜로 밥을 준다고 하는데 고맙긴 하지만 밥보다는 노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 곳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아감’을 세워달라는 주문이었다.<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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