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 <코네티컷 한국학교 교장>
얼마 전 일이다. 페루에 있는 아레키파라는 도시 한복판을 딸아이와 걷고 있었다. 갑자기 “미안해”라는 한국말이 내 주위를 사로잡았다. 뒤를 돌아다보니 어여쁜 페루 아가씨 두 명이 자기들끼리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 발을 밟았는지 미안하다는 표현을 한국말로 하며 계속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그 아가씨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말을 조금 배웠다며 그 페루 아가씨들은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한국말 솜씨를 맘껏 뽐내었다. 말로만 듣던 한류를 몸소 체험하며 새삼 한국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요즈음은 내 주위에 있는 한국 아줌마들뿐만 아니라 중국 아줌마들까지 모이면 한국 드라마 얘기로 꽃을 피운다. 드라마를 안보면 좀처럼 대화에 끼지 못 할 정도이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는 유럽에 살고 있는 친구가 카톡 메시지로 너무 재미있다며 꼭 봐야 한다고 하도 성화를 해서 시청하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드라마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드라마에 너무 몰입한 탓인지 주인공들이 시종일관 사용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내 뇌리에 깊숙이 파고들어 서울에서 자라서 사투리를 전혀 모르던 나의 일상생활에서도 툭툭 튀어 나오고 있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14년 새해 첫날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몇 년 전부터 해마다 해왔듯이 내 자신에게 올해도 염두에 두고 꼭 실천하고 싶은 새해 결심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내 자신의 질문에 나는 ‘내가 가진 게 머꼬?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상도 사투리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이제는 혼잣말까지도 어설픈 경상도 말을 하는 내가 웃겨서 한참을 깔깔댔지만 올해 내가 작정한 새해 결심이 재미있고 의미까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다. 올해는 내가 이미 가진 게 뭔지 진지하게 짚어보고 싶다.
딸 하나를 둔 이웃집 아주머니는 입만 열면 아들 타령을 한다. 오십이 넘어 아들을 낳을 수 없는 것에 넋두리를 하며 아직도 아들이 있었으면 너무 잘 키웠을 텐데 아쉬워한다. 그 분에게는 이제 대학생으로 예쁘게 잘 자란 딸이 있어 친구처럼 지내면 좋으련만 그 모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자신에게 있는 착한 딸 칭찬을 해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에게 없는 아들만 바라는 그분을 보며 그런 어리석은 모습이 나에게도 있는 것 같아 섬찟한 적이 있다.
흔히 우리들은 이미 주어진 것들은 하찮게 여기고 없는 것만 동경하는 오류를 범할 때가 종종 있다.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옆에 두고 돈 잘 벌고 잘 생긴 드라마 속에 남편과 비교하며 신세 한탄을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내 아이를 바로 지척에 두고 공부 잘 하는 옆집아이를 부러워하며 속상해 한 적도 있을 법하다.
지금은 낯선 외국에서도 배우고 싶어 하는 한국어가 나의 모국어인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영어를 하는 키가 큰 백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우리들에게는 이미 좋은 것들이 가득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지혜가 있다면 훨씬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올 한 해 동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머꼬?’ 라는 질문에 응답하며 살기로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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