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코네티컷 토요한국학교 교장>
좀 달라지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시작했던 새해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우리의 습관은 해가 바뀐다고 저절로 새롭게 바뀌는 것이 아닌 걸 알면서도 여전히 지난해와 똑같은 나를 보며 진저리가 났다. 그래서 내가 하고자 계획했던 일들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바로 그 주범은 다름 아닌 ‘미루기 버릇’ 이다.
왜 나는 미루기라는 덫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한번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된다는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해내려는 각오는 언뜻 보면 좋아 보이지만 사실 일을 당장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일등 공신이다.
완벽하게 하려면 너무 힘들 것 같은 부담감에 지레 겁을 먹고 나중에 하자고 자신과 자꾸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랑 성격이 정반대인 내 남편은 밥을 먹다가도 뭐 할일이 생각나면 당장 일어나서 해치워 버린다. 때로는 너무 급하게 처리하느라 일을 그르칠 때도 있어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내심 그런 행동력이 부럽기도 하다.
어차피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인데 해보고 후회하는 게 해보지도 못하고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듯싶다. 사실 죽기 전에 사람들이 후회하는 말들 중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들은 무엇을 잘못했다는 후회보다는 하고 싶었던 것을 못해봤다는 후회가 더 많다고 한다.
또한 미루기 버릇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떤 일의 시작을 회피하고 미루게 하는 다른 공범은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어떤 경연대회든지 나가기를 꺼려했다. 상을 하나도 못 타게 되면 나를 응원하고 밀어주었던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내 자신에게 너무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완벽하게 준비되면 그때 나가서 대상을 탈거라며 미루기라는 늪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내가 완벽히 준비되어 뭔가를 도전할 때는 좀처럼 오지 않은 채 세월은 흘러만 갔다. 그렇다면, 실패를 두려워하며 아예 시작도 못하는 이 습관의 깊은 뿌리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판이나 이목을 너무 신경 쓰는데 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오히려 관대하다. 얼마 전에 이혼을 해버린 내 친구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그 친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혼녀로 낙인찍히는 게 싫어서 불행을 감수하며 이혼을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혼하기 전에 자기가 이혼을 하면 욕하고 무시할만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 보았는데 생각보다 몇 사람 안 되었고 막상 그 사람들에게 이혼한 사실을 얘기했을 때는 자기를 비난하기보다는 별로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혼을 했겠냐고 위로를 해주더란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적 나는 내가 어떤 도전을 했을 때 실패하면 나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워 주셨던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또한 친구들이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나에 대한 자부심을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가 되어 자녀를 키워보니 이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깨닫게 된다. 다행히 내 아이는 나와 달리 기회만 주어지면 여러 가지 대회에 적극적으로 나간다고 성화를 부린다. 가끔은 장려상 하나도 못타고 집에 돌아와 속상하다고 엉엉 우는 아이를 지켜보며 많은 상념에 젖어든다.
상을 하나도 못타고 집으로 돌아온 내 아이에게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에 또 대회에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마냥 기특하기만 하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부모님도 지금 나처럼 내 실패에 관대하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 대견스러워 했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심리학에서는 미루기(procrastination)를 단순히 어떤 해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라기보다는 우선순위가 높은 일을 놔두고 우선순위가 낮은 일들을 먼저 하느라 가장 중요한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행위라고 정의되어진다. 내 경우에도 사실 중요한 일들이 급한 일에 밀리거나 덜 중요한 사소한 일들에 밀리는 것 같다.
시간 관리에 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있다. 시간 관리의 대가로 불리는 어느 교수에게 학생들이 시간 관리의 비법을 물어봤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특별한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교수의 대답을 듣고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그는 그냥 오늘 할 일들의 리스트를 적고 그 적힌 메모를 가지고 중요한 것부터 하나씩 하면 된다고 했다. 그의 대답은 ‘Just do it’ 이라는 나이키 광고의 문구를 떠오르게 한다.
많은 경우 성공의 비법은 오히려 단순하다. 나도 이제 오늘 해야 되는 일들을 적기 시작했다. 이제 하나씩 중요한 것부터 완벽하게 하려하지 말고 또한 실패를 걱정하지 말고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보려 한다. 설마 내일부터 미루기 버릇을 고쳐 보자고는 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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