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동계 올림픽이 러시아의 최남단 소치에서 개막되었다. 구소련이 와해된 후, 정치적 경제적으로 거의 후진국과 다름없는 어려움을 겪던 러시아가 다시 우뚝 선 자신들의 모습을 전 세계에 자랑하려 막대한 국력을 동원해 준비한 한 판의 거대한 축제인 셈 이다. 전례 없이 개막식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참석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열렸던 올림픽 정신을 모든 유엔 회원국들에게 환기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만이라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을 그치자는 그의 호소가 과연 얼마나 실제로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없는 비감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4년 마다 열렸던 올림픽 경기의 정신은 평화와 화해였다고 한다. 매그나 그레시아 (Magna Grecia)라고 알려졌던 지중해와 흑해 연안의 고대 도시들은 대부분이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개척되고 세워졌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의 문명세계는 이들 도시국가간의 경쟁과 이권다툼으로 전쟁과 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종교를 믿으며 합리적인 세계관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공존 보다는 파괴적인 경쟁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던 것 이다.
올림픽 휴전 (Olympic Truce)으로 알려진 조약이 성립되면서, 올림픽 경기를 통해 그리스인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평화를 이루려는 이상이 그리스인들 사이에 보편화 되었다.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5일뿐만 아니라 끝난 후에도 3개월까지는 도시국가 간의 어떤 분쟁이나 비방이나 전쟁도 그쳐야 했고, 통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모두가 준수해야 하는 성스러운 규범이었다. 상호 존중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올림픽을 통해서 점차 그리스 세계에 정착 하였던 것 이다. 서로 다른 체제나 가치를 너그럽게 받아드리고 인정하게 된 것 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상호존중을 통한 평화라는 원래 올림픽의 정신과는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 듯하다. 소치 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여러 지도자 들이 소치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동성애자들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 러시아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 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언론은 한 수 더 떠서 선수들의 안전 문제를 들고 나섰다. 테러로 얼룩진 러시아의 보안을 이유로 참가를 거부하자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러시아의 올림픽 준비가 부족하다던가, 경기장 건설 현장에 쌓인 쓰레기 더미나 집 없는 개들의 사진이 마치 서방 언론매체의 주된 관심사인 것처럼 보였다. 60년대 냉전시대를 연상케 하는 반러시아 정서가 팽배했다.
러시아와 서로 다른 점이 있어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볼 수는 없는 것 일까?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어느 정도의 실수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미국에서 열렸던 동계 올림픽 스캔들을 벌써 다 잊었는가? 러시아가 왜 서방 세계의 모든 가치나 기준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우기는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제언대로 올림픽 기간을 전후해서만 이라도 비방과 분쟁을 중지하고, 러시아의 성공과 성취를 기원하며 축하하는 뉴스를 듣고 싶다. 비방으로 평화와 화해를 이룰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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