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코네티컷 토요한국학교 교장>
칠순 넘으신 고모님께서 카카오톡으로 한국의 봄소식을 알려오셨다. 꽃시장에 가시니 싱싱한 꽃들이 그윽한 향내음으로 고모님을 반겨주셨다며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사진과 함께 아직도 소녀 같은 풍부한 감성으로 봄 이야기를 전해 주셨다. 오늘 손수 끓여 드신 쑥국도 맛이 깊어 봄이 왔다고 좋아라 하시니 유난히도 춥고 기나긴 미동부의 올 겨울을 보내며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내 마음에도 어느새 따스한 봄기운이 찾아오는 듯 했다.
지금은 여전히 집주변에 고스란히 쌓여 있는 하얀 눈 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여기에도 울긋불긋 오색찬란하게 찾아올 봄의 향연이 기다려진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라고 울부짖었던 이상화 민족 시인의 목소리가 마치 귓가에 맴도는 듯 봄에 대한 그리움이 몹시도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아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녹아내리고 파릇한 기운이 살아나는 생명의 계절이다. 매주 토요일에 모여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우리 학교는 해마다 3월 첫 주에 봄 학기를 시작한다.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이곳 겨울 날씨를 감안해서 조금 따뜻해지면 학교를 시작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특별히 올해는 삼일절과 우리 학교 봄 학기 개강일이 딱 맞아 떨어진 덕분에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삼일절 이야기를 들려 줄 기회가 찾아 왔다. 이 좋은 때를 놓칠세라 선생님들은 유치반 아이들부터 십대 고등반 아이들까지 열심히 우리들의 아픈 역사를 가르쳐 주셨고 뿐만 아니라 그 아픔을 힘을 합쳐 용감하게 이겨내었던 자랑스러운 우리들의 k-story를 들려 주셨다.
지금부터 95년 전 3월 1일 정오에 일어났던 무폭력 저항 운동의 현장을 태극기를 흔들어가며 또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가며 어린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전하시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만세 운동을 했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보았고 조국의 해방을 외쳤던 수많은 군중들의 함성을 들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유관순 열사가 문득 문득 생각난다. 그 어린 소녀가 그토록 무서운 고문을 어떻게 견뎠을까? 너무도 밝고 천진난만한 우리 한국 학교 십대 아이들을 보며 그때 유관순 누나도 저렇게 어렸을 텐데 도대체 그 무엇이 그 어린 것을 그토록 처참한 죽음으로 몰고 갔던 가라는 의문이 생기고 더욱 깊은 상념에 빠져들게 된다. 임진왜란 이후 입에도 담기 싫은 식민통치까지 그리고 그 결과로 분단까지 당하게 만든 일본 극우 세력들을 향한 참고 있던 분노가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른다.
다시금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전쟁에 이용하기위해 조선의 그 어린 여성들을 성노예화 시킨 것도 모자라 그들의 자발적인 매춘으로까지 역사 왜곡을 하고 있는 현실에 마음이 참담하다. 하지만, 이대로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우리들에게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무서운 저력이 있다. 오천년의 뿌리 깊은 역사를 통해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하마터면 일제치하에서 그들의 잔악한 모국어 말살 정책으로 인해 잃어 버렸을 수도 있었던 우리의 말과 글을 이제는 한반도를 떠나 이국 만 리에 살면서도 우리 2세들에게 가르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더욱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 덕에 피한방울 안 섞인 외국인들까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우리 한국 학교에 찾아온다. 이번 봄 학기에는 모델 같은 미모의 아리따운 프랑스 소녀가 외국인 반에 등록을 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 안 된 듯 아직 영어도 서툰데 프랑스에서는 좀처럼 배우기 어려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우리 학교를 찾아 온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던 삼일운동의 정신이 없었다면, 유관순 열사와 같은 순결한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날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난 3월 1일 우리 학교를 찾아온 그 멋쟁이 프랑스 소녀와 우리들의 영웅 유관순 누나가 자꾸 오버랩 된다.
한국에 봄이 왔다고 맘껏 자랑하시던 고모님께서는 여기도 봄이 찾아왔냐고 물으셨다. 아직도 추운 겨울이라고 불평을 늘어놓는 나에게 ‘봄을 기다리고 봄맞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봄은 찾아온다’라는 말로 나를 위로 하셨다. 그렇다! 빼앗긴 들녘에도 결국 ‘조국 해방’이라는 봄은 찾아 왔다. 이제는 ‘평화 통일’이라는 봄날도 머지않아 찾아오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아픈 역사를, 추웠던 겨울 이야기를 계속 들려줘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고모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말을 똑같이 들려주리라. 봄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봄은 기필코 찾아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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