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려 <지국장>

한국 이름에 무슨 죄가 있을까. 하이웨이 87에서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한 딸의 이름을 받아 적는 경찰이 다짜고짜 수갑을 채우고 아무런 항의도 못하게 하고 경찰서로 끌고 간 이야기를 그 어머니로 부터 들었다. 경찰이 지명 수배된 다른 한국 이름과 혼동을 한, 실수라고만 하기에는 편견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분을 이기지 못한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 그러게, 첨에 미국 이름을 지을걸 그랬어요.’ 한다.

이 김에 한번, 미국에 사는 우리 한국사람 이름 석 자에 죄를 물어 본다.
미국 사람의 이름은 퍼스트 네임은 메리, 제인, 존, 빌처럼 다 같아도, 라스트 네임이 거의가 다 달라서 이름이 혼동되지를 않는다. 그들의 성은, 배우 Swatcherneiger, 화가Leichenstein처럼 발음도 어려고 길고 복잡한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다른 사람과 쉽게 구별이 된다. 더구나 미국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보도 듣도 못한 성이 많아서 풀 네임이 같은 사람이 참 드물다.

그러나 한국 이름 석 자는 거의 가 다 비슷비슷하고 같은 이름이 많다. 은희, 희은, 희정, 영애, 정애, 정희, 희민, 민경, 경민, 성남, 성수, 수영, 희영, 민영, 명호, 호영,영환,…... 이런 이름이 주로 김씨 이씨 박씨 최씨 그리고 조씨, 정씨, 성씨, 송 씨 등 얼마 되지 않는 성과 함께 쓰이니, 이름을 혼동하는 곤란한 경지에 자주 부딪치곤 한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친해진 친구 이름이 김은희였다.

나는 그 애가 이은희인지 김은희인지 혼동을 했었다. 또 이름만으로는 성별 구별이 어렵다. 영자나 철수가 아니라면, 영희나 정희라는 이름만 해도 꼭 여자라고 단정할 수가 없고, 윤호, 민수 같은 남자 이름을 가진 여자들도 많다.

미국 생활에서는 영어로 표기된 한국 이름들의 문제가 배가 된다. 자주 쓰이는 글자들이 Young, Yong, Sung, Jung, Kyung ,Kyun, Mun, Hun, Hong, Dong, Hyo, Hyuk, Min, Jin, Jea, Hae, Hye, Whan, Wan, Won, Suk처럼 짤막한 단어 세 개로 이루어져 있어, 얼핏 보면 다 같아 보인다. 그 뿐 아니라, Jung Hea Sung 과 같은 이름이라면 앞 단어가 성인지 맨 뒤의 것이 성인지 잠시 헷갈리기도 한다. 또한 한국식 약자가 문제일 때도 많다. 예를 들어 Sung H. Kim 이런 식의 이름 하나에서 나올 수 있는 순열 조합은, 성훈, 성호, 성희, 성환, 승호, 승희, 승훈 등 수도 없다.

그렇다고 미국 이름을 쓰면 쉬운가. 그렇지 않다. Grace, Jennifer, John같은 이름도, Kim. Lee, Park, Choi라는 성과 함께 쓰일 때 누가 누구인지 혼동 시켜 주는 데는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제이슨 킴, 마이크 리, 그레이스 박 이 서너 명 씩은 된다. 또 사회단체에 Lee, Chang 씨가 있으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알 수 없다. 최근 들어 자신의 성을 표기하는 여자들이 늘어나서, 부인의 성인지 남편 성인지 혼동될 때도 많다. 어떤 여성들은, Young Mi Park Song, Ae Sook Lee Kim 등등 자신의 성과 남편의 성을 같이 쓰는데, 이 경우에도 어떤 성이 누구 성인지 잘 알 수가 없다.

한글을 영어로 바꿀 때에도 문제가 생긴다. <숙>은, Suk 또는 Sook으로, <석>은 Suk 또는 Seok으로 쓰여진다. 그러니 Hea Suk 이란 이름이 혜숙인지 혜석인지, 해숙인지 해석인지 자신이 없다. 반대로 혜숙이란 이름을 영어로 바꿔 써야 할 때, Hae Sook, Hea Sook, Hae Suk, Hae Suk, Hye Suk, Hye Sook 중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다. 예전에는 예를 들어 정 자 하나를 놓고도 鄭 定 貞 精...이름의 심오한 뜻은 온데 간 데가 없이, Jung이냐, Jeong이냐를 고민을 한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 이름에 <한글 영문 이름 표기법>이 일정하게 적용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