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 <코네티컷 토요한국학교 교장>
개구리 두 마리가 크림이 가득 담긴 그릇에 빠졌다. 첫 번째 개구리는 미끄러운 크림볼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 치며 허우적거렸지만 결국 너무 힘들어서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두 번째 개구리는 올라서면 또 미끄러지고 올라서면 또 퐁당 빠졌지만 계속해서 손과 발을 쉴 새 없이 저어댔다. 작은 몸놀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니 결국 액체였던 크림은 고체인 버터로 변해갔다. 드디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두 번째 개구리는 딱딱해진 표면을 밟고 멋진 바깥세상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이지만 굉장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과연 어떤 개구리인가? 무슨 일을 하다가 조금만 힘들어지면 결국 포기해 버리는 첫 번째 개구리는 아닌지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무슨 일이든지 하다보면 힘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크림볼에 빠진 개구리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우리 한국학교는 역사가 올해로 15년째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미국 공립학교를 빌려 쓰고 있는 탓에 얼마나 시집살이를 하는지 모른다. 교실은 빌려주면서 칠판을 못 쓰게 하기도 하고 청소비를 꼬박꼬박 지불하는데도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까지 흠을 잡아 미국 교장 선생님의 잔소리는 쉴 새가 없다. 그나마 그 정도는 참을 수 있겠는데 갑자기 전화를 해서 이번 주 토요일은 그 장소를 사용하지 말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통보하기도 한다. 셋방살이 신세가 참으로 애처롭다. 정말 학교 운영하는 게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치고 맥이 빠져 있는 나에게 봄기운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며 정원을 가꾸는 게 취미이신 어느 지인께서 댁으로 초대 해주셨다. 봄나물로 정성껏 차려진 식사를 맛있게 먹고 그분이 손수 가꾸신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했다. 푸릇푸릇 조만간 나뭇가지에는 잎이 무성해 지고 아름다운 꽃들이 반발할 듯 했다. 그런데 죽은 나무 한그루가 눈에 띄었다. 저 나무는 죽은 것 같은데 이제 베어 버려야 될 것 같다고 집주인장에게 어설픈 내 소견을 말해 주었다.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쓴 노릇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나무는 죽은 게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나무들보다 조금 늦게 잎이 무성해지고 예쁜 꽃도 핀다는 것이다.
만약에 나처럼 겉모습만 보고 그 나무가 죽은 줄 알고 베어 버렸다면 그 나무는 꽃도 못 피워보고 사라졌을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아직 때가 아니었을 뿐인데 기다리지 못하고 꺾으려 했던 나의 꿈들이 하나 둘씩 생각났다. 주위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가능성이 없다며 아예 포기해 버리려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15년 동안이나 남의 건물을 빌려 쓰는 한심한 상황에 어느 세월에 유대인들처럼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학교 건물을 지어 줄 수 있겠냐며 그런 꿈을 아예 단념해 버리려 했던 내가 부끄러워 졌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이 나무처럼 아직 나의 꿈은 죽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닐 뿐이다. 지금은 죽은 것 같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잎이 풍성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질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초롱초롱한 우리 아이들 눈망울을 보며 나는 또 다시 다짐해 본다. 조금 더디고 조금 느려도 우리들의 꿈을 꺾지 않으리라 결심해본다. 거름을 주고 물을 주며 기다리겠노라 약속해 본다.
때로는 크림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처량한 개구리 꼴이 되겠지만 결단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가능성을 짓밟아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우리는 죽지 않았다. 다만 아직 때를 못 만났을 뿐이다. 두 번째 개구리처럼 포기를 모르고 계속해서 도전하다 보면 어려웠던 주변 상황이 오히려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변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자꾸만 미끄러져서 아프고 지쳐도 크림이 버터가 될 때까지 우리들의 몸부림을 계속하자. 그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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