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 영어는 그냥 되고, 하버드나 아이비리그는 그냥 들어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미국에 산다고 영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하버드를 한 명도 못 보내는 학교도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하버드를 에지몬트 고교에서 올해 3명이나 보낸다.
집이 유일한 자산의 역할을 하는 나에겐 좋은 학군은 집 값 하락을 막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반가운 소식이지만, 에지몬트가 대치동화 될까 살짝 걱정도 된다. 친구들과 모임에서 에스더 김이라는 태권도 선수 이야기를 들었다. 시드니 올림픽 미국가 대표 선발전에서 에스더 선수는 시합 시작과 동시에 기권을 하곤 상대방 선수와 부둥켜안았다. 어릴 때부터 같이 운동을 해 온 상대방이 부상으로 선발전에 최선을 다 할 수 없자, 평소에 자기보다 더 실력이 좋았던 상대방에게 기회를 양보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에스더 선수는 자기의 멀쩡한 몸과 친구의 아픈 몸이 경기를 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며, 평소에 잘하던 친구가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메달 획득의 확률을 더 높을 것이라 했다. 나보다 잘하는 선수가 부상을 당한 것을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을 하고 덥석 받아먹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에스더 선수 이야기를 듣고 ‘와’ 라는 감탄사와 그렇게 결정을 내리도록 지켜 봐 준 부모님이 더욱 멋지시다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강남의 8학군 못지않은 학구열에 붙 타기 시작한 이 동네에서, 나는 내 아이를 하버드를 들어가는 3인 중에 한명이 아닌, 삶에 중심이 있어 행동에 옮기는 에스더 같은 깡다구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6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땐 한국 아이를 찾기 힘들었는데 이젠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한국 엄마들이 있다.
작년부터는 한국 엄마들의 공식적인 모임도 생겼다. 그리고 좋은 대학을 위한 정보 교환도 활발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이 성적과 대학 간판으로 결정되는 시대를 살던 우리 세대가 아이들에게도 우리의 삶을 그대로 물려주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어떤 악기를 하는 것이 대학입학에 좋은지, 운동을 하면 주장 정도는 해야지 명함을 내밀 수 있다며, 부모가 아이의 이력서를 만들어 주면서 ‘타이거 맘’을 부러운 눈으로 본다.
대학을 가기 위한 음악이 아닌, 인생의 희로애락을 공감하기위한 음악을 했으면 한다. SAT 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보고 배우며 넓은 세상을 느끼기 위해서 책을 읽었으면 한다. 아빠가 졸업했다란 이유만으로 유타주립대를 가겠다고 고집하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아빠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의 잠재력과 순수함과 미래를 내 손으로 마구 주물러 망치질 않는 현명함과 분별력과 의지가 있는 부모이길 바란다.
아이가 대학에 가서는 삶의 진리를 주고받는 친구와 멘토를 만나기를 소망한다. 자기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에 욕심도 부리고 깊은 생각 없이 앞서 나가겠지만, 부모들이 먼저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나누는 에지몬트 학군이 되었으면 한다.
에지몬트 뿐 아니라 다른 웨체스터 학교도 그랬으면 한다. 그래서 웨체스터는 좀 틀린 곳이야 라고 봐줬으면 한다. 단순히 하버드 입학률로 동네가 평가되어지지 않고 본질적으로 인간의 삶을 돌보고 고민하는 깊이 있는 동네로 가치가 평가되어지면 좋겠다. Go Edgemont! Go Westchester!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