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 르포-진도 팽목항
▶ 희망과 기대가 이젠 절망과 분노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엿새 째인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진도 팽목항=함지하 특파원> ‘37번 신원 미상자 특징.. 성별 남. 넓은 이마, 짧은 머리, 우측 무릎 상처, 통통한 편. 상의 반팔티셔츠, 하의 반바지 운동복...’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엿새째인 한국시간 21일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 사고 수습 현장지휘 본부 앞에 설치된 ‘사망자 현황판’에는 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시신의 인상착의가 적혀있었다.
이미 현황판을 수십 번이나 확인했지만, 행여나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언제 올라올지 모른다는 마음에 가족들은 또 다시 이곳을 찾아 서성였다. 기다림과 씨름하던 가족들은 이젠 눈물 흘리는 것도 지쳤는지, 아니면 눈물이 말랐는지 흐느낌 대신 한숨만 내뱉고 있다.
일부 가족들은 바닷가가 보이는 항구 앞에 앉아 사고 현장 쪽을 지켜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미 배는 바닥으로 가라앉아 사실상 그 안에 생존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들은 그래도 두 손을 모은다.
민·관·군에서 파견된 잠수요원들이 끌어올리는 시신이 가장 먼저 팽목항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수 많은 실종자 가족들은 침구류 등이 마련된 진도실내 체육관 대신 이곳에서 하루를 보낸다.더디게만 진행되던 실종자 수색작업이 잠수부들의 선실 내부 진입과 함께 빨라지면서 이날 하룻동안 가장 많은 29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22일 오전 0시 현재 세월호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모두 87명으로 늘었고, 실종자는 215명으로 줄었다.
구조팀이 선체 객실에서 잇따라 시신을 수습했다는 소식에 팽목항에서 기적을 애타게 기다려온 가족들은 이내 탄식과 오열을 쏟아냈다.특히 사고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들이 운구된 팽목항에는 자식들의 시신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의 절망과 통곡이 이어졌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식의 시신을 확인한 뒤 울부짖고 실신해 주위가 울음바다로 변하기도 했다.아직도 침몰한 세월호 객실 안에 남겨진 탑승자는 안산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200여명에 이르는 상황.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가는 가족들의 초조함은 점점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불신과 신속히 구조하지 못하는 현 상황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언론에 쏟아지고 있었다. 실제로 기자가 가족지원 상황실에 들어서려 하자, 실종자 가족으로 보이는 남성이 누구냐며 화를 내듯 물었다. 신분을 기자라고 밝히자 밀쳐내며 ‘저리가라’고 소리쳤다.
며칠 전에는 정홍원 국무총리에까지 물세례를 끼얹을 만큼 가족들은 지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정부는 필사적인 구조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수중 투입 인원을 늘려 24시간 선체 진입 시도를 통해 최후의 생존자 수색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수색범위를 넓혀 해상수색도 병행하고 있다.
현장 지휘본부는 함정 213척과 항공기 35대, 어선 13척을 비롯해 해경과 해군 등 641명이 구조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도 진도 팽목항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244개 단체 5,000여명이 봉사활동에 나서 피해자들에게 식사와 음료를 제공하고, 또한 각종 의료지원에 나섰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접수된 구호물품만 식품, 식수, 이불 등 30여개 종류 총 20여만개에 이른다. 현재까지 적십자와 기독교 연합회, 의용 소방대를 비롯해 진도 주민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봉사단체가 따뜻한 온정을 보이고 있다.
진돗개로 유명한 진도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관광지로도 유명해 매년 방문객이 끊이질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20년을 진도에 살았다는 한 주민은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진도에 온 건 처음”이라면서 “좋은 일로 온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빨리 아이들이 살아나오기만을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다른 부모들 생각하면 내 아들 먼저 찾아은 것도 미안”
이틀만에 시신발견 이다운 군 아버지
침몰한 세월호 수색을 시작한지 이틀 만에 일곱 번째 사망자로 발견된 이다운(16)군의 아버지 이기홍씨는 빈소를 찾은 기자에게 “다운이를 통해 이렇게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게 돼 감사하다”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친구의 신분증을 주머니에 넣는 바람에 최초 다른 사람의 시신으로 밝혀졌던 다운이. 아버지는 그렇게라도 다운이가 빨리 발견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부모를 생각하면 먼저 찾은 게 그렇게 미안할 수 없다”는 심경을 고백했다.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닌데도 팽목항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들보단 훨씬 나은 형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씨는 “아들은 아빠인 내 입에 뽀뽀를 하는 등 매우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다”며 “함께 낚시하고, 몰래 맥주 한 잔 같이 기울이던 시간들이 그리울 것 같다”며 흐느꼈다. 인터뷰를 막 마치는 순간 아버지 이씨는 “어제 다운이의 친구가 다운이가 직접 동아리에서 부른 노래를 메시지로 보내왔다”면서 “한번 들어보겠냐”고 권했다. 이윽고 이씨의 휴대폰에선 다운이의 감미로운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운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심정이 어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이씨는 짧게 대답했다.“터지죠.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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