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4월 16일 새벽, 오랜 습관대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며 무심코 TV를 켰다. 화면 귀퉁이에 ‘뉴스 특보’라는 빨간 글씨가 깜빡이고 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 모든 한국의 뉴스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져 있었다. 열려있는 모든 SNS에는 말을 잃고 눈물로 쓴 질문과 대답만이 넘치고 있었다. 다투듯 쏟아 놓는 슬픔과 위로,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지친 기다림 끝에 말없이 노란 리본을 걸으며 기적을 기다리는 간절한 기도까지…
자다가도 눈이 떠지면 TV 앞으로 달려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각종 뉴스를 살펴보아도 기다리는 소식은 끝내 없다.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던 지난 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뉴스가 일주일 넘게 반복된다는데 말문이 막힌다. 어떤 이는 배의 구조적 문제점을, 또 어떤 다른 이는 메뉴얼을 따져가며 날마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침몰 원인에 대한 각종 정보와 추측을 쏟아놓는다.
그렇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도 살려달라고 절박하게 외치던 어린 학생들을 한명도 구할 수 없었던 건지… 그 시간에도 수 백의 어린 학생들이 가라앉은 배에 갇힌 채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고비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을 생각을 하니 내 안에도 물기가 흥건히 고였다. 돌아오지 않는 혈육을 애타게 기다리며 차디찬 바다를 향해 통곡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되어 모진 성삼일을 보내고 그렇게 아프게 부활을 기념했다.
세월호 선장, 이번 세월호의 참사를 마주하는 절망감은 그 비겁하고 무책임한 그에 관한 뉴스를 접하며 극에 달했다. 안내 방송 지시에 착하게 따르며 구명조끼를 입은 채 선실에서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을 두고 어떻게 선장과 선원들이 제일 먼저 빠져 나올 수 있었는지 그들의 후안무치에 분노했다. ‘여자와 아이 먼저’라는 버큰해드(Birkenhead) 호의 전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귀한 목숨을 구했으나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이미 죽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마지막까지 선내에 있는 학생들을 구하느라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사랑과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떠난 고 남윤철 선생님…. 그리고 그 긴박한 순간, 한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나이 어린 여승무원의 숭고한 희생과 노력… 방송을 통해 전해진 생존자들의 증언에 숙연해 졌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살아나온 제자의 마음에도, 그 학생의 품에 안겼던 5살 어린 아이의 마음에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도 그들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마침 부활절을 앞두고 있던 시기여서 ‘수난복음’이 봉독되는 동안 고통 받는 예수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던 군중이었던 나는 부끄럽게도 목숨을 걸며 사투를 벌여야 하는 위기의 순간에 선장과 선생님 중 어떤 역할을 선택할지 잘 모르겠다.
세월호의 참사 원인은 하나 둘 밝혀질 터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가려질 것이다. 또 다른 사후 대책들이 이리저리 나올 것이며 없던 규칙을 다시 만들고, 또 다른 제도가 생겨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상처에 새 살이 돋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지….. 그동안 우리가 절망이라 이름 불렀던 날들이 한낱 사치스런 유희임을 알겠다.
올해에는 봄이 유난히 늦장을 피우며 오더니 4월에 핀 꽃이 눈치 없이 화사하다. 손꼽아 기다리던 봄나들이에 들떠있던,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의 아이들과 제자에게 구명복을 입히며 먼저 나가라고 등 떠밀던 선생님 모습이 야속한 봄바람에 채 지지도 않은 꽃잎이 되어 우수수 떨어진다.
4월 16일 이후 멈추어 선 ‘구조 174 명’ 을 보며 참으로 착잡한 날이다.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아픈 기다림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눈물로 마음 안에 노랑 리본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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