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 커네티컷 한국학교 교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채 넋 놓고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다가 돌이 된 사람을 망부석이라 했던가? 세월호 침몰로 대한민국 온 국민이 모두 그런 심정일 것이다. 그 차디찬 바다에 어린 자식을 묻은 어미의 한을 누군들 무엇으로 풀어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지금 슬픔과 분노와 절망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냥 단순한 재난이었다면 오히려 하늘을 원망하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선장과 승무원을 믿고 끝까지 안내 방송을 따라 자리를 지킨 착한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기가 막힌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우리를 지탱해온 사회적 신뢰가 붕괴되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섬나라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정신적 뿌리는 바로 그 나라 뱃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원칙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배가 침몰하면 구명보트로 여자와 아이들을 가장 먼저 탈출 시키고 그래도 자리가 남으면 남자를 탈출 시키고 맨 마지막에 선원들이 탈출한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어기면 즉결처분 되었다는 것이다. 선원들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보려고 침몰하는 배안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호가 침몰할 때 그 잘난 우리나라 남정네들과 뱃사람들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선장은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첫 번째 구명정으로 빠져나와 자원 봉사자들로부터 커피와 식사 대접을 받은 것도 모자라 젖은 돈을 말렸다니 이러한 참담한 보도를 정말 믿으란 말인가?
머나먼 저 바다 태평양 한가운데도 아니고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한 우리네 바로 앞바다에서 일어난 이 참사를 어찌 감당해 나갈는지 앞이 캄캄할 뿐이다. 그 파렴치한 선장에게 분노의 돌을 내리쳐서 우리 아이들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국만리에 살고 있는 내가 이렇게 치가 떨리고 가슴이 저린데 희생자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할까?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이러한 현실 앞에 다만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다시는 어른들 때문에 우리 연약한 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게 해 주시고 그 희생자 부모님들에게 앞으로 살아갈 이유, 힘, 그리고 소망을 주시라고...
어찌 보면 나도 ‘코네티컷토요한국학교’라는 배에 선장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일을 겪으며 많은 아이들을 맡고 있는 나에게도 갑자기 무거운 책임감이 엄습해 온다. 만일 목숨이 달린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열 번이고 백번이고 내 자신에게 물어봐도 아이들을 먼저 구해야 되는 게 답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닥치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아마도 평소에 갈고 닦은 한사람의 인격이 위험한 순간에 고스란히 베어 나오는 듯하다. 만일 세월호 선장과 선주가 평소에 다른 이들의 생명도 자기 목숨처럼 귀하게 여겼다면 특히 다른 이들의 자식도 내 자식같이 소중히 여겼다면 그런 몰지각하고 야비한 행동은 안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본다.
나는 과연 어떤 선장인가? 말로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과연 내가 큰 희생을 감수해야 될 상황에도 그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인가? 지금 나는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독불장군같이 진두지휘 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이들이 어리다고 얕보고 있지는 않는가?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가? 비용 때문에 아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없는가?
세월호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으며 "엄마 사랑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는 어느 여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울컥해 펑펑 울고 말았다. 결국 인생에서 끝까지 남는 건 ‘사랑한다’는 고백임을 다시 한 번 마음 판에 새긴다. 한없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나보다 힘이 없고 연약한 이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 아이들이 믿고 따르는 어른 노릇을 제대로 하며 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다시는 우리네 어른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는 일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고 싶다. 지금 나에게 맡겨진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내 아이와 한배에 타고 있는 다른 이들의 아이들까지도 사랑으로 품고 싶다. 내 인생이라는 항해를 폭풍이 몰아쳐도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이끄는 그런 용감한 선장이 되고 싶다.
우리민족이 다함께 타고 있는 운명 공동체 ‘대한민국’ 이라는 배가 다시는 이렇게 난파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온 국민이 이토록 처절한 슬픔과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 파손된 우리의 배를 굳건히 재건할 수 있기를 절실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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