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아무나 할 순 있지만 사랑 없인 힘들죠”
▶ 카도조 고등학교 24년째 교사로 재직
한국 스승의 날은 5월 15일, 하지만 미국에서 스승의 날은 정해진 바 없다. 뉴욕한인학부모협회에서 스승과 제자, 학부형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고 있지만 미국 학생들과 스승과 제자 인연은 쉽지 않다. 그런데 뉴욕에 ‘스승과 제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남아있다. 24년째 카도조 고등학교에 몸담고 있는 김경욱 교사ㆍ재미한국학교 동북부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17일에 뉴욕장로교회에서 제28회 어린이예술제가 열린다. 아이들이 예술제에 참가하면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듣고 배우는 자리다. 많은 한인학부모들이 왔으면 한다”며 재미한국학교 동북부협의회 회장으로서 한마디를 잊지 않는 김경욱, 그는 요즘들어 참 바쁘다.
오는 6월 21일과 29일 교사 연수회, 7월에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전국학술대회가 열리고 여름방학동안 포코노 지역에서 제2회 역사체험학교를 열어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생들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그는 2007 재미한국학교 동북부협의회에 2007년부터 재무담당, 총무, 부회장을 거쳐 작년 9월부터 임기 2년의 회장을 맡았다.
김경욱은 주말마다 퀸즈성당 한국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지만 한인들에게는 퀸즈 베이사이드 지역 명문, 카도조고등학교(Bejamin N. Cardozo High school) 교사로 더 유명하다. 카도조 고는 9~12학년까지 4,00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고 200명의 교사 중 한인교사는 7명, 김경욱은 24년차 교사로 올해는 10학년과 12학년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올해 10학년에게 세계사, 12학년에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9~12학년의 모의재판팀을 지도하고 있다. 올해 뉴욕시 전체 고등학생이 참가하는 모의재판에서 카도조고 팀이 퀸즈지역 최종 5개팀에 올라가는 실력을 발휘했다.”
근황을 전하는 김경욱이 교사가 된 것은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해서”라고 한다.
●틈만 나면 애들과 어울려
1962년 8월 5일 서울에서 김득용ㆍ송종현씨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경욱은 서울에서 성장했고 남강 고등학교 졸업반인 1981년 3월 29일 미국에 이민 왔다.
당시 삼촌이 운영하던 아스토리아의 아이스크림 가게 일을 돕다가 1983년부터 직접 베스킨 로빈스 아이스 크림점을 운영했는데 경기가 안 좋아 91년 가게 문을 닫고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 파이낸셜을 전공했다.
당시 카도조교 이기동 선생과 인터뷰를 한 후 1991년부터 카도조고 ESL 교사로 일하던 중 역사 선생이 다른 학교로 가면서 그 자리가 비었다. 김경욱은 학교측 권유에 따라 1995년부터 2003년까지 퀸즈 칼리지와 포담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브루클린에 있는 롱아일랜드 유니버시티에서 교육학 석사를 받았다.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는 오후면 내가 수업을 들으러 갔고 저녁 9시가 넘어 집으로 갔다. 장학금을 받기도 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0년전에는 한인 학생들이 지금보다 많았다. 한반 34명 기준으로 한인학생이 4~5명 정도, 지금은 2~3명이다. 과거에는 초기이민자들이 베이사이드 지역으로 몰렸고 지금은 롱아일랜드 지역 좋은 학군의 학교로 바로 정착한다.”
20여년전 한국어반이 3개로 활발하게 움직이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5일 꼬박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쳤고 한인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가 나서야 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다보니 같이 어울리고 싶어서 틈만 나면 전철과 버스를 타고 맨하탄의 박물관, 브롱스 동물원으로 갔다. 여름에는 부모 동의 아래 2박3일 캠핑도 갔다. ”
“잘된 학생보다 어려운 처지의 학생이 기억난다. 한때 신입생 신고식이 심하여 공원에서 잠복근무를 하고 노래방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조기 유학을 왔다가 적응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아이들도 있다. 지금도 카톡을 하는데 갑자기 연락이 뚝 끊기면 걱정된다. 한국어 교사 연수회 등으로 한국에 나갔을 때 만나기도 한다.”
통학이 어려운 학생을 아침에 자신의 차에 태워가고 굶는 제자를 위해 점심을 사다주던 스승, 다친 학생과 앰브런스 타고 병원에 가고 같이 놀아주고 얘기를 들어주는 스승, 조기유학이나 불체자 신분의 학생일수록 그를 어려운 스승이 아닌 믿음직한 맏형처럼 의지하고 따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에 가서도 그에게 상담을 해온다.
“자녀가 사춘기때 이민을 오거나, 혼자 유학 보내지 말고 아예 초등학교 마치고 오든가 아니면 대학을 마치고 유학 오는 것이 좋다. 중고등 시절에 미국에 와서 적응에 힘들어하는 학생이 많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무렵, 플러싱 메이시 백화점에서 그에게 전화가 왔다. 한인학생 4명이 청바지를 훔치다가 적발되었는데 부모 이름을 대라고 하니 김경욱 교사의 전화번호를 준 것. 달려가서 사과하고 학생들을 데리고 왔고 부모에게 연락하여 주의를 준 일이 있다.
그는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개인 전화번호를 아이들에게 주었고 실제로 아이들은 어려운 일이 닥치자 그가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이다.
심지어 교사 생활을 시작한 첫 해, 수업시간 마다 트집을 잡고 말썽을 부리던 여학생 2명은 졸업식 날, 강단에서 졸업장을 받자마다 줄지어 서 있는 다른 교사들을 제치고 그에게 달려왔다. “그동안 말썽 피워 죄송했다” 며 엉엉 울던 제자, 그래선지 그는 말 잘 듣던 학생보다 문제 있던 학생들과 정이 더 들었다.
학교에서 하는 학부모 컨퍼런스에도 그는 바쁘다. 영어가 서툰 학부모를 위해 통역을 해야 한다.
“가장 빈번한 문제는 무단결석이다. 학교에서 편지를 보내고 전화 메시지를 남겨도 한인 부모들이 모르기도 하고 아예 연락을 하지 않는다. 수업을 빼먹다보면 졸업이 늦어진다. 매년 3월과 9월에 열리는 학부모 컨퍼런스에 되도록 참여하고 조금만 신경을 쓰면 이런 일은 방지할 수 있다.”
미국 학교 현장에 서있는 김경욱은 한인학부모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한국의 학교에 가보니 많은 애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뛰지 말라, 무얼 하지 말라고 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더 그렇게 한다. 미국 학교에서는 뛰지 말라는 소리를 안 한다. 그냥 걸어가라고 한다. 자녀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인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무얼 하라고 하지 말고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대화법을 익혀야 한다.”
그는 1997년 YMCA ESL 교사, 잡 트레이닝 리더, 1994년~2001년 뉴저지 우리한국학교 영어와 한국어 교사, 2001년부터 현재까지 퀸즈성당( St. Paul)한국학교 교무주임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사목위원으로서 청소년 생활상담 교육을 하다 보니 제자도 상당하다.
퀸즈 성당 한국학교 학부모 중에는 자녀의 한글교육을 위해 왔다가 ‘카도조 졸업생’이라며 옛스승인 그에게 인사한다. 제자들은 약사, 한의사, 비즈니스 맨, 변호사 등등 다양한 직업들을 갖고 있어 식당에 가도,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가도 ‘선생님’하고 인사를 해온다. 작년에는 그에게 ESL을 배웠던 졸업생이 찾아와 결혼식 주례를 부탁, 젊은 나이에 주례를 선 적도 있다.
김경욱은 오전 7시 반에 첫 수업을 시작, 하루 5시간 수업이 끝난 오후에는 아내 김명신씨가 하는 그레이넥 꽃집으로 가서 가게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슬하에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아들 정원과 대학생인 딸 정아를 두었다.
갓 이민 와서 영어가 서툴고 학교생활에 적응도 어려운 아이, 불법으로 있다가 갑자기 영장이 나와 한국으로 돌아간 아이, 그들에게 같은 한국말 하는 스승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싶다. 졸업생들은 옛 스승이 생각나면 식혜 캔을 들고 학교로 찾아오곤 한다.“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정말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지, 스승을 믿고 따라오는 아이들이 있는 지가 중요하다.”는 김경욱, 그의 말이 오랫동안 귀에 남는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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