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며칠 전 길에서 TV 방송기자를 만났다. 잠깐 실례한다더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몇 마디 할까 하다가 나는 친 러시아 성향(Russo-phile)을 가진 사람이니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제대로 된 기자라면 친 러시아 성향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생각 하는지 다시 물었을 것 이다. 이 기자는 두 말 없이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제대로 된 기자를 만나기 어려운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을 미국인들이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현상이, 근원은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사태만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미국이나 한국 언론의 특이한 약점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세월호의 비극을 보도 하는 한국 신문을 읽으면서 한국 언론이 근본적으로 부도덕하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었다. 사태의 근원을 규명한다는 이유로 어느 개인이나 단체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을 경우 이 또한 용납 못 할 악으로 몰고 간다는 것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러시아에 대한 외교 정책을 보면 마치 철없는 청소년들이 이리 저리 뛰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고, 긴 안목으로 보아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어나는 사태에 하루하루 임기응변으로 반응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실제로 러시아의 크리미아 침략에 있다기보다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나토(NATO)의 동방 팽창정책과 친 러시아 경향의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피상적으로 보기에 우크라이나인들의 봉기에 의한 정권 붕괴로 볼 수 있으나, 뒤에서 막대한 자금을 대고 봉기조직을 지원한 자들은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소위 리버럴 자본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한국과 여러 동남아 국가들이 경험한 소위 IMF사태의 뒤에도 이들이 깊게 관여 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푸틴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러시아의 역사적 경험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러시아인들의 역사인식과 그를 기반으로 형성된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 역사는 외세의 침략에 대한 러시아의 응전으로 점철 되어 있다.
몽고족들의 잔혹한 침략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후, 바이킹들의 침략, 스웨덴, 폴란드-리투아니아, 독일, 프랑스, 그리고 19세기 영불 연합군의 크리미아 침공과 2,600만의 러시아인을 살상한 나치 독일의 침략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인들의 고난에 찬 세월은 그칠 날이 없었다.
나폴레옹의 침략군이 모스크바에 접근하자 크고 작은 궁전과 교회, 모스크바의 모든 건물들과 자기 집을 손수 불태우고 퇴각하던 러시아인들의 세계관은 과연 어떤 것일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소련이 붕괴된 후 소련의 일부였던 러시아의 위성국들이 나토의 회원국이 되었다. 친 서방 정권의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 일 뿐 거의 기정사실인 듯이 보인다.
나토는 기본적으로 소련을 대항하기 위해 형성된 군사동맹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나토의 군사적 팽창을 막아줄 보호막이 없어진 셈이다. 나토가 계속 동방으로 팽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 흑해 함대 사령부가 있는 세바스토폴이 나토에 ‘점령’ 당하는 것을 푸틴은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으리라고 오바마는 생각했을까? 궁지에 몰린 생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다. 러시아는 생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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