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 회장>
올 봄은 참 더디게 왔다. 순서대로 피고 지는 꽃과 나날이 짙어지는 숲에 채 마음을 주지 못했는데 내가 속한 세상은 어느덧 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모두가 슬픔에 빠져있던 이 망연자실한 시간에도 자연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더해져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충격은 현재 진행형이다. 희생자들이 SNS에 남겨놓은 새로운 이야기들이 뒤늦게 하나씩 공개될 때 마다 그 참혹한 현장에 모두 다시 갇혀 버린다. 그때마다 더 깊은 절망감으로 두 손을 놓아버린 사회, 무책임한 국가에 대해 분노하며 저마다의 목소리를 거칠게 쏟아낸다.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으니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생업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모정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기 무섭게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 혹여 가족 품에 안긴 희생자가 있는지 뉴스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바다 속에서 돌아온 아이가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부모와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시신을 수습하는 광주 대교구의 장례 지도사 봉사자들의 손길에 감동하고, 현장에 달려가 쪽잠을 자 가며 궂은일을 마다않는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희생자를 기억하며 함께 밝히는 촛불로, 가슴에 단 작은 리본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익숙지 않은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뉴욕 타임스에 실렸던 광고를 보았다. 절망의 끝에 마주 선 분노의 표현이었으리라. 한국 사회를 고발한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였지만, 우연히 만난 미국인 지인이 그 광고를 화제로 삼았을 때에는 우리의 민낯을 들킨듯하여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급격히 성장한 한국사회의 병폐로 인식하고 관음 하듯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에 불쾌해 하면서도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노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 모든 책임이 비겁했던 선원, 부도덕한 선주, 무능력한 정부, 그리고 최고 통치권자에게 있다고 말한다고 오늘의 절망과 분노가 치유될 수 있을까?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특검이, 국정조사가 실시되고 그렇게 현미경으로 하나하나씩 헤쳐 보면 팽목항의 피 딱지 엉겨 붙은 그 아픈 모정에 새 살이 돋아날까?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공직자가 앞뒤를 다투며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우리 각자가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위법을 고발하는 깨끗한 시민사회를 만들었다고 얘기해야 한다. 이 사회를 이끄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무한 책임을 얘기하는 사회를 꿈꾼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조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몸으로 옳은 것을 말하고 옳은 것을 가르치는 사회가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이 꿈꾸는 조국이기를 바란다.
그 옛날 4.19 학생 혁명으로 수많은 젊은 피가 길바닥에 쏟아졌음에도 이제 그 의로움은 화석처럼 교과서에만 남아 있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쓰러진 세월호 의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또한 먼 훗날 이 불행한 일이 한낱 참사로 기억되고 기록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이다.
오늘도 팽목항에는 노란 리본이 거친 바람에 펄럭인다. 사랑하는 아이를 가슴에 묻고 가난만 남은 부모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관심과 위로로 함께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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