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 <코네티컷토요한국학교 교장>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한국에 계신 친정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항상 꿋꿋하셨다. 좀처럼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큰 눈을 부릅뜨시고 무섭게 호통을 치셨던 젊었을 적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남 4녀를 두신 우리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위엄을 그렇게 지키려 애쓰셨던 같다.
그렇지만 아버지라고 어찌 이토록 고단하고 시련의 연속인 삶에서 힘들지 않으셨겠는가?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끄떡하지 않으실 것 같았던 우리 아버지도 실은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하시며 술자리에서는 한없는 마음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아버지의 외로움이 새삼 뼈저리게 와 닿는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는 나에게 산 같은 존재이다. 지금은 늙어 힘이 없다고 자식들에게 은근히 의지하시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그분을 여전히 슈퍼맨으로 여기고 있다.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가정을 지키시고 매일 매일 힘든 수고와 삶의 무게를 짊어지셨던 아버지의 희생을 알아서 일까?
이제는 나보다도 힘이 없어 보이시는 나이 드신 아버지를 나는 아직도 철석같이 믿고 있다. 나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팔순의 나이에도 어느 새 마흔을 훌쩍 넘긴 자식을 여전히 걱정하시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힘이 된다. 카톡으로 매일 안부를 물으시며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라고 당부하시는 아버지는 나의 영원한 영웅이시다. 하루라도 더 오래오래 내 곁을 지켜주시기만 바랄뿐이다.
우리 딸아이는 어렸을 적에 이 세상에서 자기 아빠가 제일 크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항상 키가 커다란 아빠가 목마를 태워주면 의기양양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날 미국 친구 아빠가 자기 아빠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종종 한다.
우리 아이는 아빠 보다 큰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난 이후로는 키 자랑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가 물에 빠지면 수영을 제일 잘 하는 아빠가 목숨을 걸고 달려와서 자신을 구해 줄 거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더니 지금까지도 아빠에 대한 그런 절대 믿음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자식을 든든히 지켜주는 울타리 같은 그런 존재 말이다.
얼마 전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던 유력한 후보 한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자신의 딸아이의 글 때문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일이 있었다. 자식을 돌보지 않고 버린 아버지가 어떻게 서울시 교육을 책임질 수 있겠냐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올린 것이 일파만파로 퍼져 선거에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딸아이의 상처가 문제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복잡한 가족사가 원인이었겠지만 결국에는 ‘아버지’라는 울타리가 무너졌기에 벌어진 일인 듯싶어 참으로 안타깝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어린 자식의 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쉽게 풀어지지 않는 듯싶다. 조선시대에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김시습도 아버지를 원망하는 글을 남겼다, 그가 어린 시절을 회고한 글에 "아버지는 병약하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새로운 여인을 얻고 나를 돌보지 않았다"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으면 당대의 인기를 끌었던 글쟁이가 자신의 글에 영원히 남을 기록으로 까지 남겨 두었겠는가?
그렇다면 자식들에게 원망 대신 존경을 받는 아버지다운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아무리 궂은 일이 있어도 자식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그런 분일 것이다. 비록 세상이 알아주는 잘난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는 그런 분일 것이다.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아도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나 있는 그런 분일 것이다. 아버지가 몹시도 그리운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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