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은 어릴적 놀이터·수련장이자 내 삶의 스승”
강원도 산골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산과 함께
19세에 출가 10년간 ‘불교금강영관’ 수련
3년 준비, 5개월 걸려 종주$“내 자신에 주는 선물”
■ 산은 내 동심의 고향
그는 1974년 강원도 횡성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산과 인연이 있었다. 농부인 아버지의 2남2녀 중 셋째 아들로 출생해 온 산과 계곡을 누비며 자연을 벗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계절마다 색색으로 변하던 동네산은 그의 동무이자 뛰어 놀던 놀이터였다. 지금도 참 산을 좋아하는 그는 “고개 3개를 넘어서 10리 밖에 있던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복숭아 꽃, 벚꽃이 피는 초가집에서 살았던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산은 내 동심의 고향”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광부의 길로 나섬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태백탄광촌으로 이사를 한다. 그곳에서는 고향과 다른 시커먼 산맥과 석탄물이 흐르는 개울가를 보면서 자라다가 어린 나이에 어른인 척 도심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 산은 무술 수련장
중학교 2학년인 열네 살. 서울로 상경, 면목동 봉제공장에 취직해 공장기숙사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직장선배들의 잦은 시달림에 대처하고 액션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술을 배우러 합기도 도장을 찾는다. 그러면서 또 다시 산과의 인연을 맺는다. 새벽마다 동네산인 망우리 고개 길에 올라 무술수련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도장과 산에서 수련을 연마한 2년 뒤 무술고단자로서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는 자신감 속에 살아간다. 매일 새벽 산에서의 무술수련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진다.
“고향의 두메산골은 내 어린 시절 추억을 간직한 산과의 인연이라면 망우리 고개 길은 내가 살기 위해 선택한 산과의 인연입니다. 그곳에서 혼자 무술을 연마하면서 삶의 자신감을 얻었으니까요” 무술고단자인 그가 어느 날 길을 가다 사소한 시비로 집단폭행을 당해 죽도록 맞는다. 그 때 나이가 고작 열여섯 살. 맞아서 아픈 것이 아니라 자신하던 무술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됐나 하는 후회로 몇 날 며칠 동안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워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찾아와 불교무도 총본산인 청련암 범어사 수련생 입교를 권유한다.
■ 산은 깨달음을 얻는 곳
평소 소림사 무술을 동경하던 그가 부산 금정산 청련암 범어사를 찾아간다. 그 때 나이가 열일곱 살. 불교무도인 ‘불교금강영관’의 수련생 길을 걷기 위함이었다. 불교금강영관은 ‘참선과 무도로 깨달음을 얻는다’의 뜻으로 ‘선무도’로 칭해지며 후에 대중화된 불교무도다. 하지만 1년 동안 7번이나 금정산을 찾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18세가 돼서야 수련생이 될 수 있었다.
그나마 7전8기의 도전 끝에 범어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하루 2,000배를 하며 무릎이 다 까져 피를 흘리고 울음을 참아가면서 견딘 일주일 동안의 마지막테스트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수련생의 길을 걷던 그는 19세에 아예 스님으로 출가한다. 불교금강영관을 수련하며 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로 심신의 안정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 때 만난 스승이 불교무도의 산 역사로 무술인들에게도 ‘전설’같은 존재였던 청호당 양익 큰 스님이었다. 그는 ‘수련생 초기 시절은 어린나이라 수련생들과 밤에 몰래 마을로 내려가 통닭과 술을 사서 계곡서 마시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무술 좀 한다는 나의 건방짐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뒤늦게 깨닫게 됐다. 그래서 심신의 평화로운 안정과 깨달음을 향한 구도적 수행을 위해 스님의 길을 택해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스물여덟 살 때 금정산을 내려와 서울서 선무도 보급을 위한 지도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3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을 때 수련생 시절 만난 선배로부터 ‘뉴욕에 가서 선무도 도장을 함께 만들자는’ 제의를 받는다. 그 때 나이가 서른한 살. 그는 스님에서 속인으로 다시 돌아오는 ‘환속’을 한 후 일반인으로 돌아와 미국의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
■ 산은 약속을 지키는 곳
미국 생활은 선배와 함께 브루클린 공원에서 새벽마다 선무도를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도장 만들기는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우선 생계도 유지하고 돈을 모아 ‘선무도 도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린 시절 봉제공장과 양복점에서 배운 옷 수선 기술로 세탁소에서 취직한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만난 이성에게 생애 첫 프러포즈를 한다. 하지만 열다섯 살 많은 연상이기에 나이차로 딱지(?)를 맞고는 문득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산악회를 따라 캣츠길로 첫 산행을 간다. ‘산사람 산악회’와 등산간 첫날 산악대장으로부터 애팔래치안 트레일(AT) 등정에 관한 얘기를 듣고 1미터가 넘는 AT 지도를 건네받으며 ‘아직 한인 중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는 말에 꽂혀 3년 계획을 세우고 단독 종주를 결심한다. 그리고 3년 동안의 준비를 한 후 2008년 5월26일 메인 주 카타딘 산을 출발, 10월 25일 조지아 주 스프링거 산에 도착하는 것으로 5개월 만에 애팔래치안 트레일 단독 종주에 성공한다. 한인 최초의 기록을 남기면서.
산행 중 무거운 등산 배낭에 어깨가 찢어지고, 무릎부상도 심해지면서 하루하루가 갈수록 혼자 산행에 따른 외로움과 무서움으로 몇 번이고 포기를 생각했다는 그는 “한발 한발 걷다보면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머물던 곳은 멀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내 머물고 싶은 곳은 가까워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산행을 이어가 결국 마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AT 단독 대장정 종주를 마치고는 “나 자신에게 뭔가 큰 선물을 주기 위해 시작한 등정을 무사히 성공해 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한인 최초의 기록도 남기기 위해 나선 AT 남쪽방향(2,175마일) 단독 종주를 성공한 그는 2016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도전에 나선다. 이어 컨티넨탈 다바이드 트레일(CDT) 등정도 감행할 계획이다. 이처럼 미국 내 대륙종단 3대 트레일 등정이 바로 자신과의 약속이자 목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메아리 산악회에서 꾸준히 산행을 하며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 산은 삶의 스승이다.
“산에 다니다보면 흰색 바탕에 빨강색 점이 찍혀있는 마치 일장기처럼 생긴 트레일 마크에 낙서가 됐거나 아예 빨강색이 지워진 것을 볼 때가 있는데, 그 마크가 잘못되어 있으면 등산객이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런 위험한 장난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는 “산행은 건강에만 좋은 게 아니라 함께 등산하는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내려올 때 힘들 일을 겪다 보니까 서로 돕고, 이해하며 오고가는 정을 나눌 수 있어 더욱 좋은 것 같다”며 산과 친해질 것을 적극 권유한다.
산이 좋아 산에 오른다는 그는 “산행을 하며 마주치는 나무, 돌, 하늘, 숲, 물 등의 자연을 통해 배우고 깨우치게 되며, 자연 앞에서 나란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기에 살아온 날들을 되새겨보며 뉘우치고 앞으로의 삶을 정리할 수 있으니 산이 바로 나의 삶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 살자, 오늘이 마지막 인 것처럼
“행복이란, 내 가슴이 뛸 정도로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일을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그는 “인생 역시 순간, 찰나다. 지금, 이 찰나를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오늘을 소중히,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과거를 후회할 일도 없고 내일은 밝은 날들이 다가올 겁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삶의 철학은 “살자,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무서워 할 일도 못할 일도 어디 있겠냐”는 그의 얼굴표정에 이미 미국 내 대륙종단 3대 트레일(트리플 크라운) 등정을 성공한 것 같은 환희가 엿보였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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