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 회장>
며칠 전, 커피 한잔 사러 들어간 작은 델리 가게에서 본 풍경이 떠올라 혼자 빙그레 웃는다.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 탓인지 냉음료를 사려는 사람들로 작은 가게 안은 가득 차 문 밖까지 줄을 서야 했다. 바쁜 마음에 짜증이 밀려오려는 즈음, 북적거리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정말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쪽에 선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각 장애우들이었다.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손짓 대화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분명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내용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소통의 방식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어느덧 짜증스럽던 내 마음까지 미소 짓게 만들고 있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두고두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던 날이었다. 상대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선입견과 색안경을 내려놓으니 그들의 행복한 대화가 들리는 듯 했다. 공감하고 소통한다는 건 그런 것이리라.
예전에는 지인들과 직접 만나거나 전화 혹은 편지를 통해서 겨우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셀 수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듣고 있는지 알 수 있는가 하면, 다양한 SNS를 통해 그의 성향, 취미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동향까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좋아요’ 하는 문을 두드리면 전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도, 나이도, 직업도, 성별에 관계없이 견고하리라던 문이 열리는 세상……. SNS 는 히말라야보다 높은 마음의 장벽을 동시간에 넘게 했다. 더불어 자신의 마음을 열어 적은 댓글은 시공간을 넘어 마주 앉아 이야기 하는 착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었지만, 오히려 소통의 세계가 이렇게 시끄러워진 만큼 진정한 소통을 하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 놓느라 남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월호 사고에 희생된 아이의 부모가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한 장의 사진은 백 마디의 말보다 마음을 울렸었다. 두 달이 훌쩍 넘어선 세월호의 참사에 온 국민이 함께 슬퍼하고 절망하고, 다시 분노하는 것도 같은 감정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치유의 길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아직 그 해법은 풀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서로의 가슴을 닫고 서로의 패를 숨겨놓은 채 상대의 마음을 훔쳐 보기만하는 듯하다. 닫아버린 마음도 무겁지만 그렇다고 닫아 버렸다고 돌아서는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시간에 홀로 아픔을 삼키는 유족들의 자리는 어디쯤에 놓여 있는 걸까?
최근 들어 시시각각 들려오는 한국 뉴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선거 중에 어느 유력한 인사의 딸이 SNS를 통해 공개했던 아픈 가족사가 결국 그를 낙마 시키는 것을 보았고, 최근 들어 총리 지명자가 자진 사퇴하는 기자 회견을 들었다. 아비가 절대 교육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딸의 고발은 그동안의 외로움에 대한 다른 표현이자 마지막 절규 같아서 마음이 못내 무거웠다.
또한 어디에 그런 정보가 쌓여 있었는지 우리 모두는 여과 없이 지명자 개인의 역사를 들어야 했다. 내가 아는 지인들조차 각자의 시각으로 자신들이 보고 싶은 사실에만 몰두하며 귀를 닫았다. 모두가 자신의 방으로 난 작은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내다 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빗장을 걸어 잠그는 사회……. ‘소통의 부재’라는 섬에 스스로를 가두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 사회에는 어느덧 ‘소통’ 이라는 말이 화두가 된듯하다. 소통의 기술에 관한 책들도 넘쳐난다.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너무도 당연한 말이, 특별히 강조되고 회자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불통의 사회’ 임을 고백하는듯하여 씁쓸하기까지 하다.
소통은 진심어린 행위를 수반하는 것이지 말의 향연이 아니다. 공감 없는 소통은 또 다른 일방통행이 될 것이다. 진심은 길을 잃지 않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