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학을 접는 이유는...행운을 나눠주는 기쁨 때문이지”
천 마리 접으면 소원 이뤄진다기에 남편 쾌유 빌며 시작
어릴적부터 손재주 남달라...20년간 10만개 이상 접어
"접을 때도 기쁘지만 나눠주면 좋아하니 더 큰 행복"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전설 속의 주인공도 아닌데 이웃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며 종이학을 접어 행운을 전하고 있다. 이미 10만개 이상의 종이학을 ‘행운’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이웃에게 나눠주었기에 ‘종이학 할머니’로 불린다. ‘종이학 행운 나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최음전(90) 할머니이다.
■신문지로 첫 종이학을 접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한 할머니가 도리어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주인공은 퀸즈 엘름허스트 노인아파트에 살고 계신 최음전(90) 할머니이다. 구순의 나이에도 종이학을 접어 이웃에게 행운은 나눠주는 일을 혼자서 꿋꿋이 하고 있는 것이다.
최 할머니가 종이학 접기에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도 식도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남편 병간호를 하면서 부터다. 우연히 친구 집에서 본 종이학을 하나 얻어서 집으로 갖고 왔다. 혼자 종이학을 펴고 접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종이학 접기를 스스로 터득했다. 이렇게 최 할머니가 혼자 처음 만든 종이학의 재료는 신문지, 신문지를 오려 첫 종이학을 접은 것이었다.
그 후 최 할머니는 남편 병수발을 하면 병실에서 종이학 접기를 시작했다. 천 번을 접으면 소원이 들어준다기에 남편이 쾌유를 기원하며 종이학을 접었다. 병실을 홀로 지키며 스며드는 외로움을 달래며 접었고, 심심할 때도 졸음을 참을 때도 종이학을 접었다. 그렇게 종이학을 접으며 9개월 여 동안 남편의 병간호를 했건만 남편은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을 뒤로한 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종이학 접던 습관은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종이학 접기에 그치지 않고 접은 종이학을 이웃에게 행운으로 전하는 나눔의 기쁨봉사로 실천하고 있다.
■종이학 접기는 나의 벗
최 할머니는 학만 접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단다. 20년 동안 종이학을 접었으면 이제 좀 편히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종이학 접기가 최 할머니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시간만 나면 의례히 손에는 종이가 들려 있고, 종이학 공예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밑받침, 깃털 하나하나를 꼼꼼히 접고, 색깔 있는 종이로 꼬리와 부리도 만들고, 거기에 까만 눈을 오려 붙인다. TV를 볼 때도, 자다가 깨어 다시 잠시 안 올 때도 종이학 접기는 최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벗이 되었다. 종이학 접는데 사용되는 형형색색의 종이와 풀 등 재료비는 미국에 함께 살고 있는 자식들 몫이다
. 아흔 살이 된 최 할머니에게 힘드니 그만두라는 말도 못하고 자식들이 아파트를 방문할 때마다 재료를 듬뿍 사온다. 종이학 접기는 최 할머니의 기쁜 하루 일과이기에 재료를 사 드리면 너무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 할머니의 집에는 온통 종이학으로 가득 진열되어 있다. 형형색색의 종이학 접는 종이, 풀도 늘 떨어지는 법이 없다. 시간만 나면 종이학을 접도록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최 할머니는 하루에 작은 학 6-7개, 중간 학 3-4개 그리고 큰 학 1개 정도를 접을 수 있는 베테랑의 솜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구순이 된 나이에 물리치료 받으러 병원 다니랴, 친구들과 바람도 쐬러 가야하고, 아파트 이웃들과 치매예방 화투도 치다보니 하루에 중간 학 1-2개 정도만 접고 있다. 그래도 최 할머니는 하루에 4-5시간 정도 종이학 접기를 하기에 손은 좀처럼 쉬는 법이 없다.
최 할머니는 “매일매일 종이학을 접으며 기쁨을 느끼니, 나의 기쁨을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웃에게 행운과 희망을 전해주고자 종이학을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최 할머니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종이학을 접는 것은 단순히 학을 접는 재미뿐 아니라 종이학을 접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행운을 기원하며 나눠주는 기쁨 때문이다.
■엘름허스트 종이학 할머니
주변 사람들은 최 할머니는 ‘엘름허스트 종이학 할머니’로 불린다. 말없이 종이학으로 행운과 희망을 나눠주는 할머니라고 끊임없이 칭찬한다. 최 할머니는 종이학 천 마리씩 항아리 모양의 투명 아크릴 상자에 담아 행운의 학이란 꼬리표를 달아 가족과 이웃 그리고 주변 사람 등 100여 곳에 전해주었다. 그 수만 해도 10만 개.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중간 크기의 종이학 공예품을 만들어 들르는 곳마다 행운의 메시지와 함께 나눠주고 있다.
최 할머니는 학을 접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를 가장 행복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 아파트 이웃 주민은 물론 아파트 관리실 직원, 교회 밴 운전사, 병원, 약국, 미장원, 은행 등 알고 있는 사람과 최 할머니가 가는 곳에는 종이학이 늘 놓여 있다. 최 할머니의 주변에는 학을 선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최 할머니의 종이학 접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행운을 얻고자 종이학을 가지러 아파트를 방문하는 한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인 노인들에게는 ‘종이학 나눔 전도사’ 또는 ‘엘름허스트 종이학 할머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만들어 나눠주는 행복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다는 최 할머니는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미국으로 이민 온 1980년대 초에는 봉제공장에 취직해 5년 동안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때도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수선을 도맡아 해 능력을 인정받을 정도의 손재주를 발휘했다. 그 당시에도 최 할머니는 베푸는 봉사를 했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살다 군산으로 피난 내려와 고생하던 시절 뜨개질로 어린 자녀들의 옷을 손수 해 입히던 실력을 지인들에게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뜨개질로 만든 조끼, 스웨터, 목도리, 수세미, 십자가 등을 이웃과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 준 것이다.
최 할머니는 이미 그때부터 만들어서 나눠주는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행복이 지금은 종이학을 접어 나눠주는 행복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하던 뜨개질이 종이학 접기로 이어지면서 베푸는 봉사를 생활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 최 할머니는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욱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최 할머니는 “내가 좋아서 종이학을 접고, 종이학을 받은 사람들이 행운, 희망과 꿈을 잃지 말고 살라고 전해주는 것”이라며 “특별히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나눌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기쁨이 들어 내가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건강하고 좋아하니 그저 나눠줄 뿐
1925년 황해도 은율에서 1남6녀의 7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최 할머니는 열아홉 살 때 고향에서 결혼해 현재 2남5녀의 7남매들 두고 있다. 1980년대 초 이민 온 최 할머니는 그 후 한국에 살던 자녀 모두를 초청해 지금은 플로리다, 뉴저지, 뉴욕 등 7남매가 미국에서 살고 있다. 6.25 때 남편과 군산으로 피난 온 최 할머니는 가끔 잠이 안 올 때면 김치, 된장 등을 얻으러 다니며 고생했던 피난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은 참으로 좋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새 편히 잠이 든다고 행복해 하신다.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맡고 있는 최 할머니의 나눔 철학은 하나다. 몸이 건강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그저 나눠줄 뿐이다. 최 할머니는 “90의 나이에도 아직 건강함 몸을 갖고 있으니 얼마나 복인지 모른다”며 “할 수 있을 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종이학을 접어 행운과 희망을 전하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 할머니는 ‘행복이란 화분에 물주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고, 숨 쉬며 호흡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그 자체’라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잔잔한 미소를 짓던 최 할머니 삶의 모습은 내가 아닌 남을 조금이라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큰 목소리를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밝고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최 할머니. 할머니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행운과 희망이 넘치는 나눔의 기쁨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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