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수필가)
오늘이 마지막이야 . 바이---
얼떨결에 그녀의 목덜미를 끓어 안고 한참 동안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지난주에 큰딸 결혼식 앨범을 총총히 들고 와서 한 장 한 장 넘겨주며 자상하게 부연 설명도 잊지 않던 그녀였다. 남편이 직장에서 다른 주로 발령 받아 이제 몇 번 못 볼 것 같다고 우는 시늉까지 하던 린다가 정해진 날짜 보다 서둘러 이사를 가게 되었단다.
2년 전에 배우처럼 멋지게 잘 생긴 남편과 내 가게에 첫 방문한 이후로 매주 한 두 번 씩 들러서 친구처럼 지내던 단골손님 이었는데 예고 없는 이별이 눈가를 흐리게 한다, 린다는 몇 가지 한국 음식을 알고 있었는데 그 중에 비빔밥이 제일 맘에 든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널찍하고 뽀얀 그릇에 가지런히 얹힌 모양이 너무 예뻐서 재료를 섞어서 비비는 것이 한참을 망설이게 된다며 통통한 몸매를 배배 꼬면서 그 순간의 안타까움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첫 손님과의 어색한 만남은 오간데 없고 비빔밥 스토리로 어느새 끈적끈적한 밥풀이 되어 서로의 낯설음을 한 순간에 날려 버렸다. 센트럴 커네티컷 주립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신 김기훈 박사님이 출간하신 "인생은 비빔밥, “맛있게 드세요"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되 살아난다. 머리말에 "인생은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맛있다, 그러므로 인생은 맛있다."라고 이 책의 주제를 삼단 논법으로 정의해 놓으셨다.
비빔밥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수고가 마치 우리 삶이 겪는 축소판 같다고 설파하신 글을 읽으면서 한국인으로서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타국에서 다양한 민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기란 그리 녹녹하지 만은 않은 현실이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생각 보다 많이 달라서 사소한 일에도 오해를 불러 오고 때론 다툼으로 이어지기 까지 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옳고 그름만을 따지게 되면 결과는 서로 마음 상하는 일만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비빔밥에는 서로 어우러짐의 매력이 있다. 잘 비벼진 비빔밥 그릇 속에는 독불장군이 없다. 모든 재료가 자신의 모양을 감추고 골고루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이고 분열되어 서로를 끌어 내리려고 만하는 이 시대를 비꼬아 볼 만한 교훈이 비빔밥 안에 담겨져 있다고 본다. 지금 보다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에도 나름대로의 비빔밥은 귀한 밥상이었다.
커다랗고 누런 양푼에 가지 수도 없는 반찬을 몽땅 털어 넣고 넉넉하게 빨간 고추장을 투척하고 딱 한 방울 참기름이면 온 가족의 만찬이 되었다. 끈끈한 형제애와 존경하는 부모님, 열심히 수고한 진한 땀방울이 버무려진 사랑을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양푼에 구멍이 나도록 행복한 숟가락 연주를 하지 않았던가?
약 4년 전에 한국 농수산 유통공사에서 주최했던 ‘한식 세계화’ 1차 세미나에 참석해서 한식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도 하고 전문가들과 다양한 실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단순히 한식을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개인적인 동기부여가 우리 한식 문화와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더 깨달을 수 있었다. 고국을 떠나와 다른 민족에게 내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소개하는 일은 즐겁고 뿌듯한 일이다.
우리 민족의 음식인 비빔밥을 타민족 사람과 손뼉을 치면서 예찬 하다 보니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자긍심이 소리만 내던 목 줄기를 잡아 세운다. 후에 알고 보니 린다는 이곳으로 이사 오자마자 한국 사람부터 찾았다고 한다. 지금도 텍사스 어딘가에서 한국 사람을 찾아내고 나의 이야기도 양념 삼아 비비고 있겠지. 고추장 빛깔 보다 더 빨간 매니큐어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보이며 "에그 프라이 두개 넣으면 안 돼" 배배 꼬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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