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코네티컷 토요한국학교 교장>
며칠 전 여름 휴가차 오랜만에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녀왔다. 하마터면 나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여행지에 혼자 남아 고생을 했을 뻔 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돌아오기 바로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이다. 카지노 슬롯머신이 즐비해 사람들이 부쩍 대는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푹신해 보이는 빈 의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온종일 무더위 땡볕에 걸어 다니느라 힘들었던지 그 의자에 그만 털썩 앉고 말았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앉아 있는 동안 어깨에 메고 있던 핸드백이 스르르 흘려 내렸던 모양이다. 호텔방에 돌아온 후에야 핸드백을 잃어버린 사실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난리 법석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 큰맘 먹고 장만했던 값비싼 핸드백과 그 안에 들어 있던 현금을 몽땅 잃어버렸다는 게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신분증이 없으면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지 못할까봐 당황이 되어 앞이 캄캄했다. 내 실수로 모처럼 떠난 가족 여행이 엉망진창이 될까봐 제일 두려웠다.
나보다는 비교적 침착하고 행동이 재빠른 딸아이가 내가 앉아있었던 의자에 다시 가서 찾아 보겠다고 순식간에 호텔방을 뛰어 나갔다. 나는 너무 놀란 탓에 몸이 굳어 꼼짝을 못 하고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정신을 어디에다 빠뜨리고 그 중요한 걸 흘리고 다녔는지 기가 막혔다. 자책을 한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기에 집에 돌아 갈 수 있는 무슨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써 보았다. 그리고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애절하게 기도했었다.
성경을 읽다보면 ‘잃어 버렸던 것을 되찾은 기쁨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온다. 특히 누가복음 15장에는 ‘백 마리 양 중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되찾은 비유’ (3-7), ‘열 개의 동전 중에 잃어버린 동전 한 닢을 되찾은 비유(8-10), 그리고 ‘ 두 아들 중에 잃어버렸던 둘째 아들을 되찾은 탕자의 비유’ (11-31) 이렇게 세 개의 비유가 나온다.
내가 여자라서 일까? 이 세 가지 비유 중에 잃어버린 동전을 되찾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여자라는 사실에 가장 큰 관심이 쏠린다. 그 당시 고대근동 지방에서 여자는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는 소외 계층이었다. 그러나 그런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이 두 번째 비유만이 유일하게 여자 그것도 보잘 것 없는 과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잃어버린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고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중한 걸 잃고 다시 찾기를 간절히 바랄 때마다 이 성경 일화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 여인처럼 다시 회복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 몸부림을 친다.
그날도 나는 그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과부의 심정으로 잃어버린 핸드백을 찾아 호텔 로비를 헤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구석구석을 찾아보아도 핸드백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맨하탄에 있는 고급 식당 화장실에서 핸드백 속에 있던 장지갑을 순식간에 날치기 당했다던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핸드백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딸아이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그 목소리가 힘이 있었고 뭔가 좋은 소식을 전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객센터에서 잃어버린 핸드백을 찾아 벌써 호텔방에 갖다 두었다는 딸아이의 말에 긴장이 풀려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옆에 사람이 있건 말건 신경 쓸 틈도 없이 나도 모르게 " 하나님 감사합니다" 를 얼마나 외쳐 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핸드백을 발견하고 고객 센터에 맡겨 주신 누군지도 모르는 그 고마운 분을 축복해 달라고 수도 없이 애원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아직은 이렇게 고마운 분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잃어버린 그 소중한 무언가를 찾게 도와주는 그런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찾은 그 조그마한 핸드백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 성경 이야기에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가 기뻐했던 것처럼 동전 한 닢을 찾아낸 여인이 기뻐 동네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인 것처럼 그리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금가락지를 끼어 주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주셨던 것처럼 나도 문득 그 핸드백을 보며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기쁨을 이웃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에게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 베풀 커다란 능력은 아직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 잠시라도 엄마의 미소를 알게 해줄 수 있는 환한 미소가 있다. 친구를 잃은 노인에게는 잠깐이라도 말동무를 해드릴 수 있고 건강을 잃은 친구에게는 따뜻한 국물이라도 가져다 줄 수 있다. 차비를 잃어버린 낯선 사람에는 버스비라도 손에 쥐어 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영혼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작지만 내가 이미 가진 것을 가지고 이웃과 날마다 나누는 잔치를 베풀고 싶다. 잃어버린 것을 찾은 뒤 다시 찾은 기쁨의 향연을 누리는 멋진 삶을 살겠노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