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물 뚝뚝 한국배.백도...자식 키우기보다 힘들었죠”
안성 과수원집 장남...귀한 한국배 직접심어 나눠먹고싶어 농장시작
히스패닉 노동자 70여명 겨울 일거리 만들어주려 주스공장 가동
미국 땅에서 한국인 입맛에 맞는 한국배와 백도를 먹다니, 이민 초창기엔 꿈도 못꿀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린ㅡ 입맛에 맞는 배와 복숭아, 포도 등 온갖 한국산 먹거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푸근한 한국적 정서 가득한 늘푸른농장 김종일 대표를 만나 그의 이민 30년을 들어본다.
▲“배 먹으러 오세요”
“처음 뉴욕 업스테이트에 농장을 열었다가 추운 날씨에 배나무가 얼어 죽었다. 배 농사에 맞는 땅을 찾아 따스한 남쪽으로 내려왔다. 3년동안 땅을 보러 다니다가 98년도에 남부뉴저지 해밀턴 알렌타운의 지금 장소로 세 번째 이전했다. 이곳에서 모든 풍성한 결실이 맺어지기 시작했다. ”
첫 농장은 10에이커로 시작되어 현재는 드넓은 600에이커(200에이커는 렌트) 대지에 배나무, 사과나무, 포도와 복숭아나무를 비롯 온갖 과실들이 자라고 서리태, 메주콩, 찰옥수수, 밤, 풋대추 고구마 등 각종 작물도 재배되고 있다.
사시사철 문을 여는 늘푸른농장에서는 단물이 뚝 뚝 떨어지는 백도, 쫄깃쫄깃한 찰옥수수, 달콤한 포도를 맛볼 수 있을뿐 아니라 이곳에서 직접 만든 고추장, 된장, 간장, 청국장 등을 현장구입 할 수 있다. 노인잔치에서 상품으로 제공되는 청국장 맛은 어찌나 좋은 지 노인들에게 인기만점이다.
“처음 배를 출하하여 한국 마켓에 가져가니 1박스에 8달러를 쳐주었다. 배나무 수명은 30년, 배가 출하되기까지 7~8년이 걸리는데 투자비용을 건지려면 수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이는 내 품삯도 안 나오는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89년부터 판로개척에 나섰지만 마켓에서 잘 안 사주더라. 그때 배 피킹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김종일은 광고 전단지를 만들어 맨하탄 32가 한인타운으로 직접 나갔다. “배 먹으러 오세요” 소리치며 오가는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면서도 “누가 배를 먹으러 뉴욕에서 2시간 반 거리 농장으로 올까” 걱정을 했다. 그런데 막상 피킹날이 되자 어찌나 한인들이 많이 몰려드는지 파킹장 자리가 모자랐다. 배나무 사이로 들어가서는 그 자리에서 트렁크채 배를 가득 넣어 가져가기도 하고 밤잠 못자고 키운 배나무가 뚝 뚝 부러지는 등 온갖 일이 다 일어났다“
당시는 한국 배맛이 그리운 시기였다. “한국 가서 한국배 실컷 먹고 오고 싶다”는 한인들이 한국을 다녀오면서 한국배를 비행기 안에 갖고 들어오다가 뉴욕 세관에 빼앗기기도 하고 요행 뉴욕으로 가져오면 한인 이웃간에 하나씩 나눠먹던 시절이었다. 그는 ‘달고 시원한 한국 배를 내가 직접 심어서 나눠먹자’는 생각에 농장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 내 유일한 한국 배 농장은 이렇게 자리를 잡아갔고 날로 배 품목과 수확량도 늘어갔다.
현재는 뉴욕·뉴저지 일대 수퍼마켓에서 배, 사과, 복숭아, 서리태, 메주콩, 대추 등이 ‘늘푸른농장’ 로고를 달고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고 그는 매년 4월에는 배꽃 축제, 매년 9월에는 대규모 무료경로잔치를 2001년부터 열고 있다. 그는 뉴저지한인상록회, 한미충효회 등 공동주최자로 열리는 경로잔치에 온 뉴욕과 뉴저지 한인노인 1,500~2,000명에게 한국음식과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노래자랑과 사물놀이 등으로 하루를 즐기는 소풍 나들이에 그의 노인 공경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영주권 없이 미국으로
1950년 경기도 안성에서 과수원을 하는 김경배·유창래씨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종일은1984년 34세 나이에 미국에 왔다. 미국으로 와서 불법체류 농장 사면 케이스로 2년 반만에 영주권을 받았고 서니사이드에 살면서 롱아일랜드 야채가게, 봉제공장을 다니며 6년간 모은 돈 4만달러로 농장을 시작했다. 처음엔 아내가 봉제공장에서 일거리를 가져오면 그는 재단을 했고 부부는 일요일마다 농장으로 갔다.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와 차안에서 주먹밥을 먹으면서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12시였다. 고속도로상에서 2번이나 차를 버릴 정도로 강행군을 했고 그때 11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했는데 피곤해서 코피를 흘리곤 했다. 아들 이름을 따서 처음엔 김성태 농장이라 했다. ”
그 아들 성태는 지금 메디칼 스쿨을 나와 현재 버지니아 페어팩스 병원 패밀리 닥터이며 며느리는 치과의사, 손자 손녀 셋을 두었다. “고생하는 것을 본 아들은 자신은 농장 안한다고 한다. 성태가 미국 온지 3년 만에 브루클린 텍 특수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참 기뻤다. ” 농장은 피와 땀 없이 되지 않았다.
“한번은 배나무가 낫으로 자른 것처럼 날카롭게 모두 잘려있었다. 사슴들이 다 먹어치운 것이었다. 2주동안 울타리를 치고 다시 나무를 심었다. 나무 잎사귀가 말라서 시름시름 떨어지는 병에도 걸렸다. 막 여물어가는 배를 다 따서 버리는 그 심정, 나무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에 애가 탔다.”
한국 배나무 전문가에게 연락해도 알 수 없고 미 농약회사에 문의해도 “한국품종이라 연구 안해 모른다” 고 답했다. 그는 럿거스대와 아틀란타 팜 에듀케이션 센터에서 과수재배 세미나가 열린다는 소식에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영어 통역으로 앞세워 찾아갔다. 나무가 불에 그슬린 듯 말라서 떨어지는 그 병은 파이어 브라이트( Fire Bright), 미국에만 있는 풍토병으로 치료법은 없고 예방책만 있다고 했다.
수년간 노력은 허사가 되어버렸고 그는 돈이 없어서 묘목을 키워 팔아야 했다. 006년에는 포도, 복숭아나무도 심었다. 참외, 대추, 옥수수, 콩 등 점차 다른 과실과 잡곡도 재배했다.
▲겨울 일거리를 만들어주다
“과수원 하시던 아버지가 이곳에 와서 나무 심는 법을 가르쳐주고 접 붙여주는 등 여러가지 도움을 주셨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여우처럼 홀린 듯 그 일만 한다. 그래도 안되면 언젠가는 잘되겠지 , 조금만 더 하면 어떻게 잘 되겠지 하면서 오늘까지 왔다. 지금은 농장으로 성공했다지만 크게 돈 버는 것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처음엔 마켓에서 값을 정했지만 지금은 내가 값을 정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가 손수 재배한 많은 농산품들은 뉴욕· 뉴저지 외국마켓과 한국 마켓은 물론 미전역과 캐나다 지역으로 출하되고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해를 뉴저지로 모셔와 늘푸른 농장 근처에 묘소를 마련한 그는 노인 공경과 봉사에 앞장서 경로센터 감사패도 받았다. 점차 노인잔치의 규모가 커지면서 매년 지출도 늘고 있지만 그는 이 일이 즐겁고 보람 있다고 한다.
“도라지 밭에 보랏빛과 흰색 꽃이 너무 예쁘게 피었다.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 보고가라”는 부인 신선이씨가 지금 그의 곁에서 함께 농장을 돌보고 농작물 직판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시사철(토요일은 휴무) 한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늘푸른 농장에는 한인 직원 10여명과 히스패닉 노동자 70여명이 일하고 있다. 600에이커에 재배되는 온갖 작물들을 관리하려면 일거리가 넘쳐난다. 그런데 그는 한겨울에도 60명의 노동자 일거리를 만들어 주며 늘푸른 농장을 열고 있다.
“일을 하던 사람이 계속 해야지 초보자는 일이 서툴고 새로 가르치자면 힘이 든다. 그래서 겨울에는 수확한 배 등 농작물 관리, 나무와 씨앗 관리, 포도와 배즙 등을 만드는 주스 공장에서 일을 시킨다.”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그는 오늘도 새벽 5시면 히스패닉 노동자들을 픽업하러 다니며 종일 그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뒹굴며 신성한 노동을 하고 있다. “요즘은 중국인들이 많이 온다. 한인이 경영하는 농장인데 피킹이나 배꽃 잔치에 한인들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김종일, “본인이 한국 배맛이 그리워 배나무 재배를 시작했다”는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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