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코네티컷 토요한국학교 교장>
도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우리 집에는 개미들이 쉴 틈 없이 드나든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조그마한 틈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개미들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나의 눈에 띄는 개미들은 그날이 초상 날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내가 흘린 쌀 한 톨을 여러 마리의 개미들이 힘을 모아 어디론가 나르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군단의 개미들을 한방에 진멸할 좋은 기회였지만 먹고 살겠다고 온갖 힘을 모아 쌀 한 톨을 옮기는 그 개미들을 나는 차마 죽이지 못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힘들어 하는 그들을 위해 그 쌀을 내가 직접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옮겨다 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내 움직임에 놀랄까봐 그냥 집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여러 마리의 개미들이 힘을 합치니 순식간에 그들은 어디론가 공동체가 나눠 먹을 양식을 짊어지고 사라졌다. 비록 하찮은 미물이지만 내 눈으로 힘을 합쳐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니 얼마나 그들이 대견스러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높은데서 우리 인간들을 보고 계시는 신의 심정이 이럴 것 같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는 우리네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내려다보곤 한다. 한 차원 높은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큰집도 작은 집도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 주차장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도 반짝 반짝 잘 닦아 놓은 고급차인지 10년도 넘게 써서 녹이 쓴 낡은 차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마다 다른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깔들뿐이다. 알록달록 화려한 각기 다른 색깔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만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요즘 한인사회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불협화음이 들린다. 마치 비행기에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열린 마음으로 상반된 양쪽 의견을 들어보면 서로 생각이 다를 뿐이지 결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들이 가진 관점의 차이가 제 각기 다른 색깔로 보여 지는 것 일 뿐이다. 색깔이 저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에 집중하면 좋을 텐데 우리들은 나와 선호하는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원수처럼 여기고 서로 다툰다. 결국 의견이 갈라져서 우리 공동체의 이익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면 우리 모두의 손해가 아닐까? 만약 내가 보았던 개미들이 쌀 한 톨을 가지고 이 개미는 이쪽으로 저 개미는 저쪽으로 가자고 우기고 싸웠다면 그들은 흩어지고 결국 사정없이 내 눈앞에서 모두 짓밟혀 죽었을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단합을 잘 하는 민족이었다. 품앗이, 두레, 그리고 계를 통해 크고 어려웠던 일들을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했던 슬기로운 민족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일제 식민지를 겪으며 받아들인 잘못된 식민지 사관에 눌려 마치 우리 조상들은 당쟁이나 일삼고 힘을 합치지 못했던 어리석은 민족으로 역사 전체를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절대 동업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고정 관념이 우리 한인 교포 사회에도 굳어져 있는 듯해서 참으로 안타깝다.
이제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다. 그 동안 열심히 땀 흘려 일궈낸 수확물들을 이제는 마음을 합쳐 한곳으로 운반할 때이다. 어떻게 이루어낸 경제적 성장인데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결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 싸움으로 손해를 입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한인 사회도 서로 양보하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잘 조율해서 공동체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일은 결코 만들면 안 될 것이다. 내가 개미에게서 배운 것처럼 우리가 힘을 합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결국 신은 우리의 편을 들어 줄 것이다.
이번 가을 학기 개강을 맞이하여 감사하게도 우리 한국 학교에 등록한 새로운 학생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한류 덕에 타민족 학생들도 꾸준히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우리 학교를 찾아온다. 내 고집대로만 하지 않고 여러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과 힘을 모아 우리에게 주어진 쌀 한 톨을 한 방향으로 잘 운반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라는 교훈을 새삼 개미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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