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로 돌아간다면 감싸주고 인정해주는 선생 되고파”
학부모도 주류사회서도 반기지 않던 이중언어교육 “7년간 도전의 연속”
21년간 한국어 가르치며 만든 문집.코리안퍼레이드 참가 등 잊지 못해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열의도, 학습교재도 없던 시절, 미국고등학교에서 한국어교육을 시작한 김혜순 이중언어 교사 1호, 그로부터 이중언어 개척자로서의 시련과 보람을 들어본다.
▲이중언어 첫 시범교 뉴타운 고교
한인들이 한창 이민을 오던 1979년, 2월 봄학기부터 한영 이중언어(bilingual education)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갓 이민 온 한인자녀에게 우리말과 영어를 함께 가르치면서 의기소침한 이민생활을 벗어나 학교와 사회에의 적응을 도와준 김혜순 전 뉴타운 고교 교사, 그가 초창기 이중언어 교육의 역사를 들려준다.
“ 이중언어 프로젝트가 활발해진 것은 Title VII 기금이 크게 늘어난 1974년 이후다. 같은 해에 내려진 대법원의 로우 대 니콜라스(Lau & Nichols) 판결은 소수민족의 영어 해득력 결핍 아동들이 모국어로 수업할 수 있는 문화를 넓혀준 계기가 되었다.”
영어에 숙달치 못하다는 이유로 정상아가 지진아 기능밖에 발휘 못하도록 내버려둔 학교 당국을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인 화교 로우씨의 승소는 이중언어 교육의 역사적 생성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 1970년대 후반 한국어가 이중언어교육 대열에 끼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시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외국어 하나는 선택해야 했고 뉴욕시가 한인은 한국어로 외국어를 대체해도 된다는 방침이 정해짐으로써 한인학생들이 모두 선택하게 되었다. 그 첫 시범교가 뉴타운 고등학교였다. ”
당시 뉴타운 하이스쿨 학생은 4,000명 중 히스패닉이 가장 많고 동양계는 3분의 1정도, 중국계가 가장 많고 한국계는 마이노리티 중의 마이노리티로 170여명 정도. 그는 공부를 가르치는 한편 한인 아이들의 기도 살려주어야 했다.
“이민 초창기 한인들이 엘름허스트에 몰려 살 때였는데 학부모들은 ‘발등에 떨어진 영어도 잘 못하는데 무슨 한국어냐 ‘, ‘내가 한국이라면 뒤도 돌아보기 싫은 사람이다 ‘는 반응이었다. 미 주류사회도 자기네 세금을 축내는 식객들 시선이라, 양측 다 탐탁치 않아했다. 이중언어 교육 무용론자들의 억센 여론 앞에 한낱 일선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묵묵한 노력뿐이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광야에 내던져진 개척자로 7년간 외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는 심정을 토로하는 김혜순, 그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밀고나갔다.“ 하루에 5시간 수업을 하는데 소셜 스터디를 가르치면서 국어1, 2, 3을 가르쳤다. 한국의 옛교과서를 구해서 직접 교재를 만들어서 수업해야 했다.”
연방정부 Title7 펀드를 받아 한국어반이 지속되려면 한국어반 학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기에 그는 당시 한국어반 부흥을 위해 힘쓰던 이들과 함께 한인교회마다 찾아다니며 청원서를 받았다. 이때 한국반 아이들은 한국문예반 서클(Korean Literary Club) 활동을 활기차게 하며 학교생활도 열심히 해나갔다.
“5월15일 스승의 날에 교장, 교감을 비롯 다른 과목 교사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아이들이 블랙 누들(잡채)을 가져와서 우리에게 나눠준다’고 하자 타인종 교사들이 앞장서 장소를 마련, 아이들은 교사들에게 음식을 서빙하며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20여명의 문예반 아이들이 타이프 용지에 꼬박꼬박 손으로 시, 수상을 써서 묶은 문집도 발간했다. 1980년 6월 ‘한울’ 문집 창간호는 52쪽, 페이지수는 점점 늘어갔다. 매년 6월 어김없이 책이 나왔고 1986년에는 타이틀이 ‘여울’로 바뀌었다. 친구들 얘기, 교실 사진, 교사 인터뷰, 독후감 등 다양한 글들이 순박한 우정을 담았다.
‘여울’은 1994년부터 1년에 두 번, 봄학기(26호), 가을학기(27호)에 나왔다. 1995년부터 한인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다시 일년에 한번, 1999년 32호를 끝으로 김혜순은 뉴타운 고교를 은퇴했다.
▲아이들을 위한 기도
뉴타운 고교 한국어반 학생들이 쓴 작품은 당시 한국일보 학생란에 수시로 실렸고 매년 가을에 열리는 코리안 퍼레이드에는 한국문예반 여학생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참가하여 강강술래를 추면서 브로드웨이를 행진하기도 했다. 김혜순이 21년간 한국말을 가르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2, 3년 안에 언어장애를 극복했다.
김혜순은 소셜 스터디와 한국어 등 과목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폴란드인이 몰린 국제적인 학교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통역자도 되었다. 한국아이들이 언니라고 안부른다고 후배를 구타하면 카운슬러실로 달려가야 했다.
“학부모들은 생계유지에 바빠서 컨퍼런스에 거의 참석 못했다. 영어가 안늘어 졸업을 못하는 아이, 서브웨이에서 전도하느라 개학해도 안 나오는 애들, 그 아이들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기도할 때 반드시 그 이름을 넣어 헛나가지 않게 해달라 기도했다. ”
김혜순은 2000년 뉴욕주 제정 교육부문 ‘올해의 여성상’, 아태교육자협회 공로상을 수상했고 은퇴하기 전까지 한국어 리젠트 시험 출제자로 봉사했다. 학생들은 돈을 모아 학교측도 놀랄 만큼 큰 은퇴파티를 열어주었고 지금도 한국 마켓에 가면 달려와 인사하는 제자들을 만난다.
▲43세에 유학길로
1926년 5월17일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김혜순은 초등학교는 중국, 중고등학교는 일본, 대학은 한국 숙명여자전문학교(2년제) 국문과 졸업후 58년부터 62년까지 건국대(4년제) 정외과를 나왔다.
“국문과를 지원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다른 과를 간 것이 훗날 미국 고등학교에서 소셜 스터디 교사가 되게 했다.” 48년~53년까지 서울신문, ‘Free World’ 월간지, 평화신문 등의 기자생활을 거쳐 53년~62년까지 창덕여고와 수도여고 국어교사로 일했다. 62~63년 영국 런던대학의 아시안 언어와 문화부 닥터 스킬렌 한국학교수의 어시스턴트로 일했고 64년~69년에는 정일권 국무총리의 비서관을 지냈다.
그가 유학을 결심한 것은 뭔가 내세울만한 자기 일을 찾기 위해서다. 이진섭, 조경희 등 사회명사들과 함께 TV좌담회에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기가 마땅치 않았던 것.
그래서 김혜순은 43세에 9살, 11살난 두 아들 손을 잡고 69년 버지니아의 프레스비테리안 교육대학(presbyterian school of christian education)으로 유학 와 71년 기독교교육 석사학위를 받았다. 71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라클랜드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한 후 매리 데이빗슨스쿨에서 4년반 특수교육 교사를 지냈다. 1973~83년에는 뉴욕한국학교 교사를 지냈다.
▲교사와 학부모는 동업자
김혜순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은 브라운대 출신으로 타판지 스쿨 아트 티처로 AP코스 교사연수회 강사이며 차남은 컬럼비아와 캠브리지, 예일대 대학원 박사로 웨슬리 칼리지 영문학 교수이다.
현재 그의 소망은 “곱게 늙어가는 것”이라는데 이미 그는 충분히 곱고 단아하다. 자상한 어머니 교사의 모습이 엿보인다. “오랜 세월이 지나니 담담한 추억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는 김혜순은 15년 된 은퇴 중간평가성적을 B플러스로 매긴다. 얼마 전까지는 영어강습 등 봉사활동도 했었지만 요즘은 보고 싶던 책을 실컷 읽고 한달에 한두번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다시 선생을 한다면 좀더 아이들을 감싸주고 인정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지금도 철이 안들었지만 철이 안든 나이에 너무 바쁘다보니 따뜻하기보다 그저 엄한 선생이었던 것같다. 아이들 문제를 더욱 열심히 들어주는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고 한다.
“교사는 학부모와 함께 동업자가 되길 원한다. 즉 한국인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게 하고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협력하는 일이다. ” 김혜순의 관심은 늘 한인자녀들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36년간 교직에 종사해온 그는 여전히 가르치는 일이 좋은가 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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