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 노숙자 집단 거주지‘정글’... 쓰레기·배설물로 환경오염 문제 심각
▶ 오갈 데 없는 100여명 “이젠 어디로 가야하나요?”... 하이텍 붐 이후 치솟은 렌트 중간가 월 3,000달러
미국에서 부자가 가장 많은 실리콘밸리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노숙자 천막촌이 4일 강제 철거되었다. 캘리포니아 주 샌호제 시는 이날 방역복과 작업모를 착용한 50명의 철거반과 3대의 쓰레기 트럭, 불도저 등을 동원하여 300여 거주민들이 거두지 못해 남기고 간 매트리스에서 접시, 옷가지 등 남루한 삶의 흔적들을 밀고 지워냈다.
샌호제 시내 개천인 ‘카요티 크릭’을 따라 거의 1마일 길이 68에이커 땅에 형성되어온 이 천막촌은 노숙자들의 임시 집단 거주지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정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곳의 철거를 결정하고 노숙자들을 보다 안정된 주거지에 수용하려는 시당국의 노력은 지난 1년 반 동안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지역 중 하나인데다 정부의 재정난 등이 겹쳐 그 노력은 기껏해야 부분적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다. 최소한 100여명의 ‘정글’ 거주민에겐 그나마 천막조차 철거되어 당장 잘 곳이 없어졌다는 의미다.
“우린 며칠 전부터 짐을 추려서 정말 중요한 것만을 챙기고 있다”고 그레이스 힐라드는 말했다. 유일한 가족인 치와와 ‘럭키’와 함께 작은 텐트에서 기거해온 힐라드는 지난 15년간 들락날락하면서 이 천막촌을 보금자리로 삼아왔다. 60대인 그녀는 자신은 운이 좋은 축에 낀다고 말했다. 만성질환이 있어 한 쉘터의 침대를 배정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샌티에고 고메즈(39)는 앞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아무 곳도, 정말 아무 곳도 갈 데가 없습니다”갈 곳이 없기는 리처드 마티네즈(52)도 마찬가지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일했다는 그는 기자에게 다가와 시가 발급한다는 하우징 바우처를 어떻게 받느냐고 물었다. 철거 이틀 전인 2일, 털모자를 쓰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고 서있던 그는 아내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로버트 아길레(56)가 천막촌에 오게 된 사연은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서 중산층을 유지하며 사는 게 얼마나 불안한지를 역력히 보여준다. 엔지니어링 컨설턴트였던 그는 1990년대 말 하이텍 붐의 버블이 터진 후 사양길을 걷다 자신의 직종이 중국으로 아웃소싱되면서 실직과 함께 집을 잃었다. 골관절염을 앓던 아내와 함께 아파트에 살았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차에서 기거하다 지난 1월부터 이곳 ‘정글’로 들어왔다. 일용직 노동을 하는 그의 천막은 프로판 히터와 스토브, 플랫폼 매트리스도 갖춘 ‘보금자리’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곳에 남아있을 작정이라고 했다. “그들이 사람들을 다 내쫓는다 해도 곧 수백명이 다시 몰려들 겁니다”이본 바비세오는 비싼 렌트 때문에 노숙자로 전락했다. “난 달러트리에서 일했고 아파트에 살면서 차도 있었어요” 그런데 해고와 렌트비 인상이 동시에 닥치면서 거리에 나앉았다고 했다.
샌호제 시는 지난 몇 년간 ‘정글’을 방치해왔으나 주정부와 지역 수자원 당국자들로부터 이곳의 쓰레기를 치우고 환경을 정화하라는 압력이 강해지면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천막촌에서 나온 쓰레기와 배설물로 오염된 개천이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까지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글’ 철거를 결정한 시당국은 지난 18개월 동안 4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천막촌 거주민들의 대안 숙소를 마련해 왔다. 140여명에겐 쉘터 등 주거지가 마련되었고 60여명에겐 주거비 보조 하우징 바우처가 지급되었다. 그러나 그런 정도 보조로 이 지역에서 살 곳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애플과 구글을 비롯한 수많은 하이텍 컴퍼니가 들어선 실리콘밸리의 중심 도시인 샌호제는 하이텍 인력이 밀려들면서 주택가격과 렌트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질로우 부동산 리서치에 의하면 샌호세의 렌트 중간가격은 월 2,934달러다. 샌호제 메트로폴리탄지역은 1년 전보다 16%가 인상, 3,163 달러로 올랐다.
4일 아침, 일부 거주민들이 천막에서 짐을 꺼내 쇼핑 카트에 싣고 있었다. 담요와 옷가지와 접시들…보따리가 무거워 곳곳에서 진흙에 바퀴가 빠진 카트를 끌어 올리느라 끙끙대는 모습이 보였다. 시 당국자들과 함께 나온 샘 리카르도 샌호제 시장 당선자도 한 거주민을 도와 진흙에 빠진 카트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개나 고양이를 안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어디로 갈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두운 표정의 이들은 하나같이 “정말 모르겠다”는 대답만 되풀이 했다.
‘정글’ 거주민 중에서 갈 곳을 마련한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떠나기 시작했고 철거 당일까지 남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다시 거리로 내몰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매일 ‘정글’에 나와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 샌디 페리 목사는 강조했다. 쓰레기와 배설물이 쌓여 있는 데다 이제 물이 불어나고 있는 이 개천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란 사실엔 동의하지만 “시 당국은 보다 나은 노숙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뉴욕타임스·LA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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