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고유 분위기 파괴한다” 주민들 반발
▶ “주택 소유주의 당연한 권리” 주장도
1937년 건축된 브래드버리 주택의 본래 모습.
공상과학 소설가인 레이 브래드버리가 50년 동안 살며 글을 썼던 집. 재개발 붐을 타고 지난 1월 철거되었다.
[오래된 집 허물고 현대식 대저택 건축 붐]
LA의 공상과학 소설가인 레이 브래드버리는 50년 동안 한 집(10265 Cheviot Dr.)에서 살면서 글을 썼다. 1937년에 지은 밝은 노란색의 이 주택은 웨스트 사이드 LA의 아담하고 부유한 동네, 구불구불한 길 한편에 은둔하듯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어느 이른 아침 건축물 철거단이 들이닥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 동네의 오랜 역사 한 자락이 무너져내렸다.
브래드버리의 50년 정든 집은 이제 굴뚝 두 개와 벽 서너 개만 남은 채 완전히 사라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년 LA 전역에서는 수십년 된 주택들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재건축 붐이 불고 있다. 브래드버리의 집은 그 가장 최근 케이스가 된다.
LA에는 공예 작품 스타일의 아기자기한 집, 스페인 미션 스타일의 주택 등 중산층 고 가옥들이 밀집한 오래된 동네들이 곳곳에 있다. 주택을 지으려 해도 지을 땅이 없는 LA에서 개발업자들은 이들 동네에 눈독을 들였다. 오래된 작은 집들을 밀어내고 대지를 최대한 활용해 저택을 지으면 상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이렇게 지은 집들은 보통 200만 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고즈넉하던 동네 분위기가 파괴되어 버린다며 반발이 심하다. 동네마다 주민들이 재개발 반대단체를 만들어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운동은 사실 LA뿐 아니라 미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건축 양식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영화 세트 같은 길들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부촌이 많은 LA에서는 싸움이 특히 격렬하다. 주민들 다수가 영화 세트 디자이너, 영화감독들, 배우들인 동네들이 상당수다.
건축업자들은 주택 철거 붐을 환영한다. LA 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징조라는 것이다. 재개발은 수요를 반영하는 것뿐이라고 그들은 보고 있다. 이들 주택이 지어지던 8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설비들, 예를 들면 미디어 룸, 널찍하고 호화로운 욕실, 정교한 부엌 시설을 갖춘 대저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은 개인적 선택의 문제”라고 남가주 건축업협회 LA-벤추라 지부의 스캇 우엘렛 회장은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동네가 옛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들은 더 크고, 더 현대적인 집을 갖고 싶어 하지요. 어느 정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래된 주택들이 수천채씩 허물어져 가면서 동네 분위기는 흔들리고 주민들은 분열되고 있다. 할리웃이나 베니스 못지않게 LA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커뮤니티들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손상되고 있는 데 대해 시민운동가들도 주목하고 있다.
이웃에서 어느 집이 헐릴 것이라는 첫 경고는 보통 한밤중에 삐 삐 삐 하면서 들어오는 불도저 소리이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시간 쯤 되면 수십년 그곳에 있던 집은 목재와 돌 더미로 바뀌어 있다.
“대저택 건축은 LA의 특징을 해치고 거주환경에도 해가 된다는 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재개발 반대 주민 단체인 베벌리 그로브 연맹의 셸리 웨이저스 대표는 말한다.
주민단체들의 압력이 거세지자 LA 시의회는 주택 건축 및 파괴에 대한 규제 강화를 추진 중이다. 과거 철거 바람이 한바탕 불면서 지난 2008년 통과된 법규는 너무나 허점이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건축 및 철거 규제 강화안은 현재 도시 계획담당관들이 검토하는 중으로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면서 개발업자들의 입김이 시의회에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들이 주민단체들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다.
시정부에서 일한 적이 있는 도시계획 전문가 딕 플래트킨은 “이건 2년씩 걸려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아니다. 서너달 아니면 다섯 달이면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라고 말한다.
LA 건축 및 안전국에 의하면 지난 2014년 개인주택 철거 허가서는 1,728건 발부되었다. 그 전해에는 1,323건이 발부되었다. 한편 2010년에 발부된 것은 709건 뿐이었다. 할리웃에서 행콕팍 동네들을 거닐어 보면 이런 사실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신규 주택들이 이웃의 집들을 한없이 작아 보이게 만들고, 한때 집이 있었던 부지들이 먼지 자욱한 공터로 비어있는 광경들이 쉽게 눈에 띈다.
LA 시의회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의 테디 데이비스는 재개발 문제가 선거구 전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는 개발업자들의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톨루카 레이크부터 실버 레이크 까지, 셔먼 옥스에서부터 라브레아-행콕팍까지 어디서나 말들을 합니다. 주민들의 심기를 정말로 흔들어 놓고 있지요. 100년 된 집들이 있는 데 그 집들이 두시간만에 사라진다. 그리고 나면 거대한 비행기 수송차량이 그 집들 옆에 주차되어 있는 겁니다.”
LA는 사실 항상 허물고 다시 짓기로 유명한 도시이다. 지금의 재개발 반대는 LA는 도무지 역사 보존의식이 없는 도시라는 통념에 대한 도전이다. 재개발로 발생하는 제일 큰 문제는 커뮤니티의 성격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LA의 사적지 보호운동가인 애드리언 스캇 파인은 말한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것이 주택 소유주의 권리이다. “크고 번쩍거리는 집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우엘렛 회장은 말한다.
“그 동네에 1년을 살았든 40년을 살았든 주택 소유주로서의 권리는 같은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주민들 모두가 재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집을 원한다. 가족 수가 많은 정통 유대인 가정이 밀집한 동네에서는 특히 그렇다. 오래된 집들을 허물고 매끈한 현대식 주택들로 바꾸면 동네 집값이 함께 오른다고 환영하는 주민들도 있다. 동네마다 재개발 반대 - 찬성의 두 그룹이 있다고 브래드버리의 한 이웃주민은 말한다.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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