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3때 남미로 가족이민 후 단신 미국행... 조립공·마켓·세탁소 등 닥치는 대로
▶ 96년 이후 현 업체 인수 매출 6배로 키워
1996년 견과류 전문 제조·유통업체 ‘D&C’를 25만달러에 인수해 연매출 1,500만달러를 넘는 업체로 성장시킨 이동찬 대표가 LA 다운타운 회사 매장에서 자체 생산한 땅콩봉지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박상혁 기자>
[견과류 유통업체 ‘D&C’ 이동찬 대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얻은 지혜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한 추진력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나이가 있다. LA 다운타운에서 땅콩을 비롯한 각종 견과류(nut) 제조·유통업체 ‘D&C Distribution Co., Inc.’(이하 D&C)를 운영하는 이동찬(66·미국명 토마스) 대표 얘기다. 그는 그야말로 ‘바닥’에서 시작해 연간 1,5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의 CEO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다소 어눌한 말투에 마음씨 좋은 시골 아저씨를 연상케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성공을 거머쥐기까지 거쳐 온 숱한 고난과 역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 했다. 땅콩 속에 파묻혀 산다는 이유로 조카들로부터 ‘땅콩 왕‘(King of Peanuts)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이 대표를 다운타운 사무실에서 만나 그의 어제와 오늘,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D&C는 어떤 회사인가.
▲ 견과류를 제조·패키징 해서 유통 및 소매업체에 공급하는 도매업체이다. 이 회사는 거스트 피코울라스(Gust Picoulas)라는 이름의 그리스 이민자가 1907년에 설립한 회사로 내가 1996년에 25만달러에 인수했으며 인수 후 내 이름과 아내의 이름(채옥) 머리글자를 딴 ‘D&C’로 사명을 변경했다. 여러 종류의 땅콩, 아몬드, 캐슈어 등 견과류와 말린 과일(dried fruit)을 전문으로 취급한다. 제품은 유통업자나 소매업체에 공급되며 인수 당시 250만달러였던 연 매출이 지금은 6배인 1,500만달러로 뛰었다.
남가주, 오리건, 워싱턴, 텍사스주 등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175개 업체가 주 고객으로 고객 인종비율은 라티노가 절대다수인 80%, 백인 10%, 한인 10%이다. H-마트를 제외한 모든 한인 마켓에서 판매되는 견과류는 우리 회사 제품이다. 회사(매장) 규모는 1만4,000스퀘어피트, 직원 수는 11명으로 모두 라티노이다.
- 미국에 오게 된 계기는.
▲ 배재고 3학년 때인 1966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 그 당시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었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니팅(knitting) 회사에서 1년여 근무한 뒤 칠레, 파나마, 과테말라, 자메이카 등을 거쳐 만 19세 때인 1968년 꿈에도 그리던 미국 땅을 밟게 됐다. ‘아메리칸 드림’ 하나만 바라보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었다.
사실 운이 좋았다. 자메이카에 머물면서 알게 된 미국 영사에게 스패니시를 가르쳐 주며 그와 친해졌고 ‘올림픽을 보기 위해 멕시코에 가기 전 미국 구경을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는 흔쾌히 미국 방문비자를 발급해 줬다.
- 처음 미국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 원래 뉴욕에 정착하려고 했지만 아버님 친구의 딸이 시카고에 살고 있어 시카고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특별히 할줄 아는 게 없어 다운타운에 있는 니팅 회사에서 밤일을 하면서 낮에는 주크박스(jukebox) 제조회사에서 조립공 일도 했다. 내가 4남 중 막내인데 1969년 큰형이 아르헨티나에서 LA로 이민을 오게 돼 그해 LA로 이주했다. 1969년부터 LA 사람이 됐으니 진정한 올드타이머인 셈이다.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가족이 모두 LA로 이주했다.
- 견과류 사업을 시작하기 전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맛보았는데.
▲ 우리 가족은 LA에서 일본계 후손이 운영하던 소규모 마켓을 3,000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부모님, 3명의 형과 함께 가게에서 숙식을 하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듯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 가게를 인수한지 1년6개월 만에 매상을 전 주인보다 4배 이상 끌어올렸다.
이 가게를 하면서 가족 모두 영주권을 받았고 구입가에 마켓을 한 한인에게 판 뒤 샌피드로에서 더 큰 규모의 마켓을 1만5,000달러에 매입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마켓은 큰 재미를 보지 못해 손해를 보고 업소를 처분했다. 이후 LA 한인타운에서 작은 커피샵을 운영했지만 역시 비즈니스가 잘 안 돼 미국 수퍼마켓에서 밤일을 하는 등 생계 유지를 위해 투 잡을 뛰어야 했고 세탁소 에이전시 사업에도 손을 댔으나 이 또한 실패했다.
- 인생이 한편의 드라마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나는 결혼을 정말 잘한 것 같다.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977년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는데 3년 뒤인 1980년에 집을 팔면서 8만달러의 수익을 챙겼다.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이 돈으로 곡물시장에 투자를 했는데 1년반 만에 투자금을 홀랑 까먹었다.
고민 끝에 아내에게 돈을 날렸다고 고백했는데 아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모든 걸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자”고 말하며 용기를 내라고 해 정말 마음이 넓은 여자임을 느꼈다. 아내는 항상 내 의견을 따라주는 편이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 견과류 관련 사업은 한인들에게 다소 생소한데 어떻게 이 분야에 진출하게 됐나.
▲ 세탁소 에이전시 사업을 접고 나서 한국 외환은행으로부터 1만달러를 대출 받아 마늘, 페퍼, 시즈닝 등을 소매업소에 공급하는 사업권을 샀다. 5년간 이 일을 하다 결국 비즈니스 환경악화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했는데 자연식품이 전망이 좋다는 판단 하에 이를 공급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다행히 당시 잘 나가던 휴즈 수퍼마켓과 물건 납품계약을 체결했고 20년 가까이 이 회사를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다 1996년에 ‘D&C’를 알게 됐고 장기적 발전 가능성을 보고 25만달러에 이 업체를 인수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D&C’를 인수한 직후 경비절감을 위해 직원들의 봉급을 10% 깎았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수년간에 걸쳐 모두 회사를 떠났다. 지금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후 새로 입사한 직원들이다.
- 직원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대부분 직원들은 10년 이상 장기 근속한 직원들이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회사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함께 고민한다. 종종 회식도 하고, 공원에서 피크닉도 하며 사기를 북돋우려고 노력한다.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 비즈니스는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 내가 판매하는 제품의 품질에 자신감을 가져야 하고 열정 또한 필수다. 거래처와 좋은 관계 역시 중요하며 내가 잘 아는 분야를 택하고 신용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같은 세상에는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트렌드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 지금까지 그래왔듯 무리한 사업 확장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실을 다지며 계속 기본에 충실한 경영전략을 펼치겠다. 70세까지는 ‘D&C’를 경영하고 싶으며 아들 2명 중 누구라도 사업을 계승하길 원한다면 밀어주고 싶다. 내가 젊은 시절 복싱을 해서 그런지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재미동포 대표팀 권투선수로 1972년 한국 전국 체전에 참가했으며 마라톤도 두 번이나 완주했다. 사업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 몸 만들기에 열중한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월드컵을 참관했다. 은퇴하고 나면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할 계획도 갖고 있다.
[약력]
▲ 1948년생
▲ 1966년 배재고 3학년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
▲ 1968년 중남미 거쳐서 도미
▲ 1969년 LA 이주, 마켓 인수하며 첫 사업 시작
▲ 1996년 ‘D&C’ 25만달러에 인수
▲ 1996년~현재 ‘D&C’ 대표
<구성훈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