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층의 1/4 다양한 경력 배경으로 자원봉사
▶ 청소년 교육, 저소득층 의료서비스 등에 관심
할리웃 제작자이자 작가로 활동했던 피터 로스텐. 그는 은퇴 후 몬태나로 들어가 비영리 기구를 설립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그의 비영리 기구 MAPS는 방과후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영화, 테크놀로지, 음악 그리고 창업을 가르친다.
[가진 것 먹고 쓰기보다 사회 환원에 보람 느껴]
은퇴하고 나면 제2의 경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평생 해왔던 일과는 다른 일을 찾는 것인데, 지역사회 봉사가 그 한 선택이 되고 있다. 생의 마지막 장인 은퇴생활에서 삶의 목적과 사회정의를 추구하며 새롭게 의미를 찾는 것이다. 힘은 들지만 의미와 보람이 있는 일을 위해 자원 봉사하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
미국봉사단(AmeriCorps) 노인봉사단(Senior Corps) 등을 운영하는 정부기구인 전국 및 커뮤니티 봉사협회에 의하면 지난 2013년 노년층의 24%가 자원봉사를 했다. 이들이 봉사에 헌신한 시간은 총 1억9,000만 시간에 달한다.
미시시피, 삼각주 깊숙이 자리 잡은 드루에서 자라난 글로리아 카터 디커슨(16)은 지난 2009년 은퇴를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소작인의 13자녀 중 한명으로 자란 그는 미시건, 배틀크릭과 미시시피, 잭슨에서 회계사로 35년 간 일을 한 후 은퇴했다.
1960년대 디커슨은 형제들과 함께 힘을 합쳐 동네 고등학교를 인종 통합 학교로 만들었다. 교육과 정의, 변화의 힘을 믿었던 부모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그가 은퇴하고 돌아와 보니 그의 고향을 포함한 선플라워 카운티는 빈곤이 더욱 극심해졌고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계속 떠나고 있었다.
실패한 학교 시스템을 주정부가 접수했고, 동네에는 식료품점 하나 없었다. 공공 서비스는 거의 모두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선플라워 카운티는 전국에서 가장 가장한 카운티 중 하나가 되었다. 2013년 달러 기준 일인당 연소득은 1만2,000달러로 미시시피 주 일인당 소득(2만 달러)에 크게 못 미쳤다. 평균 기대수명도 줄어들고 있었다.
디커슨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교육 운동 프로그램에 합류해 5년간 일을 한 후 그 자신의 비영리 교육 기구를 설립했다. ‘우리 함께 변화를(We2Gether Creating Change)’이라는 단체로 아이들을 직접 돕는 기구이다. 빈곤에 찌든 환경에서 형성된 아이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식품 배급소, 드라마 클럽, 자영업체들, 댄스 팀, 주말 웍샵을 시작하고 10대 임신 관련 카운슬링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디즈니 월드에도 갔다 왔다. “아이들에게 중산층들은 어떻게 사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디커슨의 비영리 기구는 파트타임 직원 두명만 두고, 그랜트를 받고 그의 사재를 털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2012년 이후 그가 보살핀 학생들 중 98%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97%는 대학에 등록했다고 은퇴 후 봉사를 장려하는 비영리기구 앙코르(Encore.org)는 밝힌다. 디커슨은 학생들에게 대학 장학금과 여름방학 일자리도 알선해 준다. 이 모두를 통해 그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은 모두 1,500명이 넘는다.
할리웃에서 영화와 TV 제작자이자 작가, 영화 편집자로 일하다 은퇴한 피터 로스튼(66)도 문제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주는 일에 매료되어 있다. 할리웃의 과도한 경쟁 속에서 35년을 보낸 후 그는 몬태나의 비터루트 산맥 아래 다비로 이주했다.
지역 학교에 예술 교육이나 직업 교육과 기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기 돈 1만 달러를 들여 MAPS(공립학교 미디어 아트 프로그램)를 시작했다. 영화, 테크놀로지, 음악 그리고 창업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11년이 된 그의 기구는 지역 학생 150명에게 방과 후 영화제작 클래스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은 고교 졸업의 가치, 10대 흡연의 위험, 수학과 과학 공부가 주는 혜택 등 공공 메시지를 전하는 동영상들을 직접 제작해 돈을 벌기도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도록 돕고 있습니다. 성공을 경험해보게 하고 장차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로스텐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했던 1989년 영화 ‘진짜 믿는 사람’ 을 만들고 제작했으며 TV 시리즈 ‘까마귀와 킹 여사’를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패의 경험도 없지 않았다. 50대 중반이 되고 미래보다는 과거의 날들이 더 많다고 판단될 때 그는 변화를 결심했다.
그가 남들 돕는 일을 하게 된 것은 열정 넘치는 그의 부모에게서 영감을 받은 덕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때 착한 유대인 소년이었던 그는 이제 브루클린 태생 불교도로서 몬태나에 정착해 자신이 부모에게서 지도 받은 것을 그대로 그곳 10대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뉴욕에서 변호사로 17년간 일했던 조세핀 머카도(73) 역시 디커슨처럼 은퇴 후 사회봉사를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북쪽의 추위도 피할 겸 역시 변호사였던 남편 헥터 윌렘스와 함께 플로리다, 올란도로 갔다.
“처음 이주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잘 몰랐어요. 더 이상 변호사로 개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만 확실했지요. 뭔가 커뮤니티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1999년 플로리다에 도착한 후 그는 저소득층 주민, 특히 히스패닉들이 의료 서비스를 거의 못 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다음 해 머카도는 히스패닉 보건 이니셔티브를 시작, 병원과 저소득층 라티노 커뮤니티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지난 14년 동안 그는 그랜트를 받아 올란도 지역 저소득층 수만명이 건강검진, 매모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건강교육을 실시했다.
10남매 중 하나인 머카도는 그의 부모가 “가난했지만 남들을 도왔다”고 말했다.
“나의 목표는 항상 커뮤니티를 돕는 것이었다. 내가 도운 사람들의 얼굴에서 안도의 미소를 보는 것 만한 보상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디커슨과 머카도와 로스텐은 앙코르로부터 목적상 펠로우로 선정되었다. 은퇴 후 단순히 제2의 직업을 갖는 차원을 넘어 다른 이들을 돕고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는 소명을 실천하는 표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은퇴 후의 삶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채워 넣는 모범 은퇴자들이다. 은퇴하고 나면 대개 먹고 사는 문제에서 다소 놓여나면서 사회 환원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대신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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