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한국의 이세돌 프로 9단과 중국의 구리(古力) 프로 9단의 피 말리는 혈투,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세기의 대결 10번기 승부가 펼쳐져 1억의 세계 바둑동호인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또한 지난해에는 워싱턴에서도 한국의 대한바둑협회(KGA)와 미국바둑협회(AGA)가 주관하는 국제대회인 ‘제1회 워싱턴 오픈 바둑대회’가 이틀간에 걸쳐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미국내 여러 지역의 바둑 애호인들은 물론 워싱턴 지역 한인 바둑동호인도 많이 참석하였다.
특히 이번 대회는 모든 경비와 장소를 대한바둑협회에서 후원하고 상금과 상품도 지원하는 등 한국 바둑의 세계화(世界化)의 일원(一元)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기서 서대원 씨를 30여년 만에 만난 것이다. 너무나 반가워 연유(緣由)를 물어보니 대한바둑협회 부회장 자격으로 대회 참석차 워싱턴에 왔단다.
기억은 또 그때 그 시절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 주미대사관에는 73년 부임한 함병춘 대사의 후임으로 77년 무렵 김용식 대사가 부임하여 계실 때다. 나도 학생 신분으로 대사관의 무관부에 미국 현지직원으로 잠시 근무한 적이 있다. 한국의 경제사정도 안 좋고 하여 한국에서 파견된 많은 외무부 직원이나 무관들이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로 지낼 때다.
협소한 장소에서 구관과 별관으로 나누어져 근무하고 같은 사무실에서 공동으로 근무하다보니 모두 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일과가 끝나는 저녁이면 대사관 아래 층 문서 수발실에서 바둑판이 벌어졌다. 당시 주미대사관의 바둑 최고수는 강홍식 씨. 대사관 총무과 문서수발 담당으로 근무하던 분으로 요즈음도 가끔 만나는 분이시다.
어느 날 강홍식 씨가 “한국 외무부에서 바둑 최고수로 있는 분이 이번에 새로 부임하여 온다”고 한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바로 서대원 고수(高手)다. 과연 강홍식 씨는 큰소리 칠만한 바둑고수였다. 바둑 한판 두는데 시합 바둑 두듯 어찌나 진지하게 두던지 진땀을 흘리며 장고(長考)에 장고를 거듭했던 생각밖에 안 난다.
어린 시절 기재가 뛰어나 한국기원의 원생이었다는 서대원 씨는 프로기사가 되는 길은 접고, 외무고시에 패스하여서 외교관이 되었다. 당시 30도 안된 젊은 나이에 외교관이 되어 외무부 최고가는 근무지인 미국에 올 수 있다면 대단한 학식과 실력이 겸비되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외무부의 젊은 수재(秀材)로 대단히 촉망받는 분이었던 그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위이기도 하다.
이제는 오랜 관직생활을 헝가리 대사를 끝으로 마감하고 바둑이 인연되어 대한바둑협회 부회장으로 바둑 국제화에 일익을 담당한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새 30여 년 전의 풋풋했던 젊은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오랜 관직생활로 관록(貫祿)이 잡힌 중년신사의 모습만 남아있다.
새삼 감개(感慨)가 무량((無量)해진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른 길을 걸으며 삶을 살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바둑이라는 끈질긴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되고 그리고 다시 헤어지고…. 이런 것을 해후(邂逅)라고 하는 건가. 사람 인연(因緣)의 무상(無常)함이 새삼스럽다.
필자: 풍운재 최환정(미국명 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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