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되는 ‘울밑에 선 봉선화’ 노래는 작곡가 현제명 선생이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 전 고향을 방문차 갔을 때, 같은 동네에 살면서 친동기간처럼 각별히 사랑했던 부모를 잃고 혼자 살고 있는 봉선 이를 위해 즉석에서 작곡하여 마을 사람들 앞에서 불렀던 애달픈 노래다.
이 노래는 한반도의 구석구석에 퍼져나가서 나라를 잃고 일제의 압제 속에서 깊은 신음을 하고 살던 남, 북한 한민족의 슬픔을 대신해준 대표적인 노래였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병당해 전쟁터로 끌려간 아들과 짐승 같은 일본군의 위안부로 정신대에 끌려가버린 어린 딸들의 어머니들이 가슴을 치고 단장의 눈물을 삼키며 자식을 잃은 시름을 달래기 위해 불렀던 슬픈 노래가 ‘울밑에 선 봉선화’였던 것이었다.
1945년 8.15 해방이 되고서 일제가 한반도에서 물러가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건만 나라가 남, 북으로 갈라져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이념 논쟁을 하던 통에 6.25 전쟁을 맞아 이북에서 남한으로 탈출한 피난민들이 부산시의 국제시장 뒷산에 천막촌을 치고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면서 이북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며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지으면서 불렀던 노래가 또한 ‘봉선화’였다.
그 당시에 봉선화 못지않게 실향민들의 애환을 달래준 노래로 ‘고향 그리며’가 있었지만 ‘울밑에선 봉선화’만큼 고달픈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 곡은 없었다.
며칠 전 KBS에서 3.1절 특집으로 제작한 ‘열린 음악회’를 시청하였다. 이 프로그램에 세계적인 비올라 연주자인 용재 오닐이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가를 멋지게 연주했다. 2차 대전 중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처절하게 죽어간, 나라 없는 유태인들의 슬픈 사연을 표현한 이 영화 주제가는 유태인 출신의 거장 이삭 펄만이 연주하여 명곡으로 만든 슬픈 곡이었다.
이 지극히 슬픈 곡을 혼신을 다해서 용재 오닐이 미국 입양아로서의 힘들었던 순간들이 그의 연주에 오버랩 되어 그의 연주가 더욱 감동적이었다.
2차 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에게 600만 명을 학살당한 유태인들은 전후 70년에 이르는 동안 지구 끝까지 학살범들을 찾아내어 단죄하고 독일 정부로부터 사죄를 받아 냈다. 대한민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국력이 분산된 때문인가. 일본은 한국을 우습게 보고 사죄는커녕 일본이 저질러 놓은 침략의 역사를 말살하고 독도까지 넘보고 있다. 국론이 분열되고 한국 민의 모래알같이 갈라지는 대동단결하지 못하는 국민성을 일본인들이 간파하고서 한국민과 한국정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다시 한 번 반성해 봐야겠다.
영화 신들러 리스트의 슬픈 주제가는 독일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승리를 끌어낸 노래라면, ‘울밑에 선 봉선화’는 정신대에 끌려간 할머니들의 한을 담은 노래로 영원히 남을 것 같아 마음이 애달파진다. 미국도 한, 일 양국 정부의 옹고집으로 교착된 근시안적인 자태를 꼬집어 조속히 현 상태를 종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 일 정부는 국제 사회의 권고를 받아 들여 바람직한 정치적인 해결이 이루어져 현해탄의 뱃고동 소리가 더욱 우렁차게 울려 퍼질 그날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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