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언 씨와 모친 이용기 씨가 경희 사이버대학 졸업장과 학위증,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을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다.
전신마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중증장애인이 대학 졸업이라는 인간승리를 이뤄냈다.
콜럼비아 소재 로레인 요양원에서 24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윤석언 씨(47)는 지난달 14일 경희 사이버대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2011년 3월 1일 미디어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던 윤 씨로서는 정상인과 다름없는 4년만의 졸업이다. 문학사를 전공한 윤 씨는 4년간 50여 과목을 수강, 141학점을 취득했다. 평균학점도 4.3점 만점에 3.867점, 백분율로는 90.72점의 우수한 성적을 얻었고, 부전공으로 미국학도 공부했다.
또 이 대학의 문예독서 및 논술 지도 교과과정을 모두 이수,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도 가졌다. 윤씨는 재학 중 줄곧 우수한 성적을 유지, 대학으로부터 성적우수 장학금을 6차례 받았다. 2012년에는 제6회 경희 사이버대학 해외동포 문학상도 수상했다.
윤씨는 1991년 23살의 대학생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 아래 온 몸이 마비됐다. 40일간의 혼수상태를 거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목 척수를 다쳐 전신마비는 물론 성대도 손상돼 1년간 말을 하지 못했다.
윤 씨는 눈동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부착된 안경으로 작동하는 컴퓨터를 이용해 책을 읽고, 리포트와 메일을 작성하고, 시험을 치렀다. 윤씨는 낙담과 희망,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된 절박했던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 사고 난지 10년 후인 2001년 말 시집 ‘마음은 푸른 창공을 날고’를 출간하기도 했다.
윤 씨의 대학 생활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힘들었다. 그동안 몸은 더욱 약해져 오래 앉아있지 못해 공부 자체가 어려웠다. 시험기간에는 탈진해 입원치료도 수차례 받았다.
특히 논술 지도 과정은 책을 많이 읽고 과제물도 다량으로 제출해야 했기에 더욱 힘이 들었다. 윤 씨 혼자서는 책을 읽을 수 없어 400-500쪽에 이르는 교재를 윤 씨의 모친 이용기 씨가 일일이 스캔해주면 컴퓨터로 봐야 했다.
이 씨는 “책 한권 스캔에 7-8시간 걸린다”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던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니 힘든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시험을 치를 때 컴퓨터 작동이 안 되거나 온라인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대학 측에 비상연락을 하려 해도 시차가 맞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윤 씨는 한국서 장애등급을 받지 않았기에 장애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단지 시험시간을 남들보다 더 연장받았을 뿐이다. 이나마 매학기 시작할 때마다 교수들에게 편지를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윤 씨의 장한 도전에 동포들의 성원이 이어졌다. 2012년 서울대동창회와 한국대학동창회협의회가 골프대회로 기금을 모아 전달했고, 2013년 미주세종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수여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한국문학 장학금도 받았고, 윤 씨의 기사를 보고 버지니아의 동문 선배가 격려차 찾아오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수시로 들러 윤 씨의 공부를 도왔다.
윤 씨는 이제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지만 “너무 좋아요”라고 연신 말하며 기뻐했다. 윤 씨는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저로 인해 도전과 용기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몸이 불편해 한국에서 학사모를 쓰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윤 씨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올 7월 서울의 국제 사이버 신학대학원에 진학, 신학 공부를 하려 한다. 더욱이 윤 씨의 동생 석현(연방공무원) 씨가 올 여름 윤 씨에게 여행을 시켜주기 위해 준비 중이다. 윤 씨로서는 치료차 마이애미를 방문한 것과 주일마다 교회를 다니는 것 이외에는 장애자가 된 뒤 첫 여행이다.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는 윤 씨는 졸업의 기쁨과 함께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있다.
<박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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