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는 서럽다
바둑은 상수(上手)와 하수(下手)가 엄격하게 구별된다. 대국 시 상수는 흰 바둑돌을 잡고 하수는 검정 돌을 잡고 둔다. 바둑 예법상 개인적인 신분이나 나이는 바둑판 앞에서만은 구별이 없다. 오로지 급수가 높은 고수만이 상수 대접을 받는다.
대국 시 앉는 좌석도 상수는 당연히 상석에 앉을 수 있으며 대국을 시작할 때에도 흑돌을 잡은 하수가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한다. 지도대국인 경우 인사말로 “한수 배우겠습니다”하며 대국을 시작한다.
이러한 모든 바둑의 규칙이나 예절이 일본 바둑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바둑을 기도(棋道)라는 이름으로 예절과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발전시켜왔다. 근대 바둑 초창기시절 일본 바둑 명문가에 입문하여 수업을 받았던 한국 바둑계 인사들이 한결같이 혹독한 일본의 바둑예절과 수련과정에 대하여 얘기한다.
그 당시는 상수와 하수의 차별로 서러울 만큼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허지만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친 만큼 프로기사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평생 바둑을 바라보면서 생업이 되고 승부사로 존재하려면 자기보다 한수 위인 상수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 입문의 길
요즈음은 바둑 평준화가 이루어져 일본에 바둑 유학을 가는 일은 드물어졌다. 바둑에 재능이 있다는 소년 소녀들이 프로기사가 되는 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국기원의 원생이나 기존 프로기사들의 내제자로 입문하여 프로기사가 되는 등 길이 많이 열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등고시보다도 어렵다는 프로기사의 관문은 매우 좁다. 매년 실시되는 입단대회에서 극소수의 인원만이 프로기사 입단이라는 영예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기재가 뛰어난 수재들 사이에서도 프로 입단은 바늘구멍 들어가듯 어렵다. 실전에 선수로 뛰고 있는 프로기사들과 실력으로도 대등해져야 가능하다.
일단 어려운 프로기사의 관문을 뚫고 입단한다고 하여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프로기사의 세계는 실력만이 전부이다. 첩첩이 놓여있는 실력의 높은 장벽을 또 뛰어 넘어야 한다.
-승부사는 비정하다
프로기사의 세계에서는 상수와 하수의 개념이 없다. 이제 막 입단한 초단(1단)이나 프로 바둑계에서 산전수전 겪어서 입신(入神)의 경지에 도달한 9단이나 시합대국에서는 대등한 입장에서 진정한 승부를 가려야한다.
이제 갓 입단한 자라고 해서, 또는 단위가 낮은 자라고 해서 봐주는 것도 절대 없다. 프로의 세계에서 승부사로 존재하려면 상대를 쓰러트려야 내가 일어설 수가 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실력으로 이기는 자만이 상수로 대접 받을 수 있고 그 전리품(戰利品)인 돈과 명예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 사이인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치열한 바둑대결을 되돌아 볼 때면 승부사들의 비정한 면을 보는듯하여 조금은 마음이 찡해진다. 하지만 바둑에서는 스승을 이기는 길이 가르침의 보답이라는 말도 있다.
어느 분야나 정상의 벽은 높다. 늘 치열한 경쟁과 도전을 통해 오를 수 있다. 그 승부 자체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원동력이 각 개인의 보다나은 삶을 만들어주고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키워주는 작은 소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다운 꿈은 꾸는 만큼 행복하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詩句)를 되새기면서….
choi1581@daum.net
풍운재 최환정(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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