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경영’과 재벌.
50년 넘는 경제개발 동안 수많은 이름과 단어가 흔적을 남겼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이 두 단어일 듯싶다. 지금이야 우리 경제가 많이 성숙했지만 해외 투자설명회가 열릴 때마다 두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써야 했다.
대기업 오너의 그릇된 모습이 나올라치면 외국 언론과 투자자들은 득달같이 재벌과 오너경영이라는 한국적 기업문화를 공격해 댔다. 이를 변호하는 한국의 언론을 향해 시민단체들은 ‘재벌의 앞잡이’라고 비아냥댔다. 철모르는 중고생까지도 ‘대기업’이라는 단어만 보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인식하곤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이를 이용했다. 말로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칠 뿐, 결국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기업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기업에 대한 공격이 인기를 끌어올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정치인들의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인식의 포퓰리즘은 이렇게 우리 스스로를 갉아먹어 왔다. 오너경영과 재벌의 역할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기는 했지만 이내 무게 추는 나쁜 쪽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재벌과 오너경영은 경제개발이 낳은 사산아이고 사라져야 할 유물일까.
최근 일부 기업들의 경영 모습은 많은 생각을 품게 한다.
대표적인 곳이 한화다. 사실 한화의 오너인 김승연 회장에 대한 인식은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그의 행위는 1세대 창업자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뚝심과 과감한 의사결정은 그룹 전반에 상승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삼성과 빅딜, 이라크 신도시 사업은 물론 그룹의 최대 리스크라 했던 태양광 사업마저 긍정론으로 바꿔놓았다. 만년 꼴찌인 한화 야구까지 ‘중독야구’로 표현될 정도로 탈바꿈했다.
지난 15일 한화생명의 ‘연도대상’ 시상식에 나타난 회장의 모습에 설계사들이 느낀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재계에서는 요즘 한화의 전성기가 다시 도래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SK 사람들에게 한화의 이런 모습은 부럽기만 하다. 최태원 회장이 옥중에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사석에서 만난 그룹 임원은 “최 회장은 인생에서 가장 의욕적으로 사업을 키우고 지휘해 나갈 나이다. 그의 부재가 가져오는 손실은 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아파했다.
이런 측면에서 최 회장이 공을 들였던 SK 종합화학의 중국 충칭 부탄디올 플랜트 합작사업이 현지 법인 설립 2년이 지나도록 착공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SK 네트웍스의 KT 렌탈 인수 실패도 그룹 입장에서는 뼈가 아프다.
그래도 SK 하이닉스의 모습은 오너경영이 갖는 긍정의 바이러스를 확인해 줬다는 점에서 흐뭇하다. 외국인들이 재벌과 오너경영을 공격하면서 포인트로 삼는 것이 바로 ‘선단식 경영’이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이를 비웃듯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다.
지난해 그룹 계열사 전반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4조원이 넘는 순익을 올리며 그룹 전체 순익의 3분의 2를 맡더니 올 1·4분기에도 1조5,000억원의 이익을 올리면서 효자 역할을 했다. 하이닉스의 선전을 시황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원인분석이 제한적이다. 총수의 인수 결정 이후 가져온 그룹의 일사불란한 지원과 과감한 투자는 오늘날 하이닉스의 뿌리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 와병이라는 거대한 리스크와 마주했음에도 의젓함을 잃지 않은 것은 특유의 시스템 경영을 이유로 들 수 있지만 3대에 걸친 오너경영의 철학이 뿌리내린 탓이 크다. 이재용 부회장의 여유와 머뭇거림 없는 의사결정에는 오너경영의 긍정적 바이러스가 체화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너경영은 부정의 전염 기질이 숨어 있다. 총수의 왜곡된 의사결정은 그룹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시장은 이를 바로 잡을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교정 능력을 갖췄다.
지금이라도 ‘오너경영’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국민에게 전파하고 이를 통해 한국적 경영학을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 경제단체들이 할 일도 바로 이것이다. 잃어버린 기업가 정신을 되찾는 작업도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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