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 승부의 세계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을 네 박자로 나누어 본다면 사람들이 인생은 흥망성쇠(興亡成衰)의 4박자라고 말하지 않을까. 조그마한 바둑판 안에서도 복잡한 과정을 두루 거치면서 흑돌과 백돌의 승패가 4박자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해보고 싶다.
어떻게 바둑을 둘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포석(布石)으로 시작하여 세력을 쌓고 영토를 확보해야하는 중반전(中盤戰), 그리고 어느 정도 승세가 드러나는 종반전(終盤戰), 한집이라도 더 차지하겠다고 벌리는 마지막 치열한 끝내기 전투이다. 이렇게 4박자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엄격한 승패의 생사고락이 들어있다.
바둑은 흑백이 한 번씩 번갈아 두면서 매수마다 최선의 선택을 필요로 한다. 일단 한번 착점을 하면 절대로 무를 수가 없다. 아차 하는 순간에 놓인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패인으로 직결될 수도 있다.
바둑은 깊게 생각하여 앞 수를 읽어보고 심사숙고하여 두는 게임인데 요즈음은 대부분의 바둑대회에서 시간제한이 적용되어 생각해볼 여유도 별로 없다. 장고하다가 시간패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둑은 아무리 전체적으로 잘 두었어도 상대보다 한집이라도 모자라면 이길 수가 없다. 실력이 엇비슷한 상태에서는 한집의 차이로 승패가 엇갈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바둑에서 한집의 차이란 정말 미세한 차이라서 한집 승부를 실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끔 가져보기도 한다.
바둑대회에서는 승부를 구별하기위해 흑을 잡고 두는 상대에게 고미로 6집반을 공제해주기 때문에 비길 수는 더구나 없다. 이기는 승자의 영광과 지는 자의 굴욕과 패배의 아픔만 있을 뿐이다.
-돌부처 이창호 9단의 무심전법
한 세대를 풍미한 대한민국의 바둑 황제 이창호 9단은 별명이 돌부처다. 바둑판에다 눈을 내리깔고 수행승이 기도를 하듯 한 수 한 수 두어간다.
바둑 둘 때 얼굴 표정 역시 무심(無心)의 극치다. 별로 잘 두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 두는 것 같지도 않다. 특별한 바둑비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없어 보인다. 상대방이 도발을 해도 웬만해서는 먼저 공격도 안 한다. 그저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만 갈 뿐이다. 하지만 집수는 언제나 상대와 균형을 이룬다. 조금 앞서가려고 하는 상대는 늘 불안하다. 나 자신 어디 허술한 데는 없는가, 아니면 집이 모자라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눈을 내리깔고 바둑판만 바라보는 돌부처 같은 상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대. 손자병법에 적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는데 도대체 마주앉은 돌부처 9단의 속마음을 아무도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스승인 조훈현 9단도 사제간 무한대결에서 결국은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세계의 내노라고 하는 프로기사들도 돌부처 9단 앞에서는 쪽을 못 쓴다. 이것이 이창호 9단을 세계의 바둑황제로 만든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이 9단은 실수 안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기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다는 말로도 이해가 된다.
끝없이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는 집념과 상대방의 작은 실수를 바로 승부로 이어가는 탁월한 분별력이 돌부처 9단의 비법이다.
이건 웬만한 의지와 집념이 없어서는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계 바둑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회기록 41연승을 이루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실수도 수라고 하던데.
문득 실수 투성의 지나온 미국생활을 뒤돌아보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실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꼽을 만한 큰 실수도 잘 넘기고 살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도 실수 없이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가져봐야겠다.
choi1581@daum.net
풍운재 최환정(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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