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연봉 8만5천달러 제시... 금융센터 공실률 5%로 뚝... 타업종과 임금격차 벌어져
▶ 금융권 영향력 확대되면 우수인력 편중 다시 심화... 산업 위축·거품붕괴 우려
[월가의 부활]
금융위기의 된서리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월스트릿이 빠른 속도로 팽창을 거듭하며 우람한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대형 은행들은 올 봄 신규 채용한 대학졸업 예정자들에게 연 8만5,000달러의 기본급을 제시했다. 7만달러 선에서 맴돌던 급여 기준선을 5년 만에 처음으로 상향조정하며 인력시장에 ‘왕의 귀환’을 알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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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심장부의 사무실 공실률이 급속히 하락한 것도 금융산업의 부활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월드 파이낸셜 센터’(WFC)로 알려진 로워 맨해턴 복합금융단지의 사무실 공실률은 금융위기 여파로 한때 41%까지 치솟았지만 지금은 5% 아래로 내려섰다.
브룩필드 플레이스의 전신인 WFC는 금융위기 직후 공실률 폭락사태를 겪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전철을 밟는 듯 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총 500억달러의 손실을 입은 메릴린치를 매입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대대적인 중복부서 통폐합 작업을 벌이면서 사무실을 대거 폐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계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던 자기자본 거래 전문회사 제인 스트릿 캐피털과 뱅크오브뉴욕 멜론 등이 다투어 월스트릿 중심가로 이동함에 따라 빈 사무실은 지난 2년 사이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금융업계의 지갑도 두둑해졌다.
고수익-고위험 거래가 되살아나면서 지난해 미국의 대기업들은 금융위기가 터지기 1년 전보다 더 많은 기업 인수합병(M&A)을 단행했고, 월스트릿은 천문학적인 컨설팅 수수료를 챙겼다.
월스트릿을 뿌리째 뒤흔든 금융위기 이후 7년의 기간이 지난 지금 증권업계 인력 규모 역시 2007년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이와 함께 메인 스트릿으로 통하는 기타 업종 근로자들과의 임금 격차도 부활했다.
물론 월가를 할퀸 금융위기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전 업종을 통틀어 최고의 몸값을 받는 직장인은 대부분 월가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최고액 연봉자들은 월가에서 실리콘 밸리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인력 수급은 예전만큼 원활하지 않았다.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실리콘 밸리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인력 확보전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월가는 이제 실리콘 밸리와 맞장을 떠야 할 입장이다.
금융권 인력채용 전문업체 관계자들은 월가의 기업들이 최근 몇년 사이 고용기회를 대폭 늘렸다고 밝혔다.
중역 스카웃 업체인 ‘하이드릭 & 스트러글스’의 파트너인 티머시 홀트는 “월가의 전체적인 고용수준은 건전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전보다 훨씬 선별적인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홀트는 “한 때 2~3년간의 고용보장 조건을 내세워 인력시장을 쥐고 흔들던 은행들이 요즘은 단지 1년의 보장기한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인들의 귀에 익숙한 월스트릿 대기업들은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감원을 단행했지만 인력 충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부틱 투자은행, 지역 은행과 미국에 교두보를 구축하려는 외국계 은행 등 월가의 주변부 금융사들이 새로운 인력 수혈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월가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듯 고용 주도 그룹에도 변화가 생긴 셈이다.
미국 경제는 20세기와 21세기 초반에 대공황(Great Recession)과 대침체(Great Depression) 등 두 차례의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이들 두 차례의 위기가 금융산업에 끼친 영향은 큰 차이를 보인다.
1929년에 점화된 대공황으로 중상을 입은 미국의 금융산업이 이전 상황으로 복귀하기까지는 무려 40년이 걸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에 힘입어 미국 경제는 기사회생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특수’에 힘입어 장기 호황의 토대를 구축했다.
이에 반해 금융권의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
대공황 직후 강화된 규제조치들로 은행의 수익이 떨어지면서 금융권의 고용과 임금은 하강압박을 받았다. 전쟁 특수도 누리지 못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2007년 말 리세션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월가는 놀라운 복원력을 발휘하며 예전의 위치를 거의 되찾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대침체 당시 위기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월가의 분위기는 한창 잘 나가던 2000년대 초반 상황을 연상시킨다.
따가운 비판을 받았던 월가의 고임금도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금융업 풀타임 근로자 1인당 평균 임금은 대공황 이후 1999년에 이르는 70년간 일반 노동자 임금보다 2.2배가 높은 정도였다. 금융업계는 2007년 일반 근로자보다 4.2배 높은 임금을 받다가 금융위기를 맞았다.
이에 비해 2008년 금융위기로 곤두박질쳤던 금융업자들의 평균임금은 2013년 일반 근로자 평균임금에 비해 3.6배나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고 그 이후에도 추가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업부문 중역 채용 전문업체인 콘 페리의 노아 슈와르츠는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누구나 세계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했다”며 “2009년과 2010년까지만 해도 경제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남아 있었으나 지난 18개월 사이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쑥밭이 되어 었던 월가는 짧은 시간에 원상복구에 성공했지만 빠른 성장속도가 오히려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보고서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주요국의 금융권이 지나치게 방대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타 업종에 비해 금융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두드러지게 크면 경제성장이 위축되고 생계수준도 떨어진다.
뿐만 아니다. 유능한 인력이 금융권에 집중되면서 활황과 거품붕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금융권이 확대되면 결과적으로 소비자와 기업을 빚더미에 올려놓게 될 다양한 금융상품이 쏟아져 나오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부채 수준이 상승하면 부실화된 경제는 조그만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은행과 투자회사 등의 주 업무는 자본이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경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브란데이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쿨의 경제학자인 스티븐 체케티는 한 국가의 금융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경제의 생명선인 생산성 성장을 더 심하게 저해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체케티는 월스트릿의 임금이 메인스트릿의 임금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을 경우 우수인력의 편중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뉴욕대학(NYU)의 토머스 필리폰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30년간 미국의 금융업계는 생산성 향상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자본 흐름을 이끌어주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바로 이런 현상이 계층 간 소득 불평등을 부추겼다.
시카고대 부스 비즈니스 스쿨의 경제학자 루이지 징가레스는 “선진 경제일수록 정교하고 수준 높은 금융산업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지난 40년간 이어져온 금융산업의 급속한 성장이 사회에 유익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줄 이론적 근거나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금융권의 적정 규모와 역할을 둘러싼 논란은 2016년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이슈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포퓰리스트(민중주의자)들은 미국 경제의 공룡인 금융산업의 규모와 영향력을 더욱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위기에 처한 은행의 긴급구제(bailout)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공동 발의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매서추세츠)과 데이빗 비터 상원의원(공화·루이지애나)이 지적한 바와 같이 금융산업이 아직도 지나치게 방대하고 강력하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 금융 로비스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경기 대침체기에 채택된 각종 금융권 규제안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른 소득 불평등과 맞물려 월가 규제 강화안이 내년 대선의 경제분야 쟁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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