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개 중하층 출신의 고액 연봉자들
▶ 수백만달러 가지고도 정체성은 ‘99%’
백만장자인 밥 와이드너와 앤젤라 마르치 부부. 이들은 수백만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사는 걸 보면 전혀 돈 많은 사람 같지 않다. 샤핑을 할 때도 할인매장만 찾고 양말을 꿰매 신을 정도이다. 한자리 숫자 백만장자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아끼고 절약하는 습관 평생 이어져]
플로리다에 사는 밥 와이드너(57)는 브룩스 브라더스나 랄프 로렌 같이 좀 비싼 아웃렛 매장에 갈 때면 내기를 한다. 100달러 한도 내에서 몇 개나 살 수 있을까? 지난번 샤핑 때는 7개가 정답이었다. 와이드너는 물건을 제값 내고 사는 법이 없다.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진 다음에야 산다. 짠돌이로 사는 게 몸에 배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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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 앤젤리 마르치는 남편이 양말을 꿰매 신는다고 흉을 보지만 그 역시 옷 샤핑은 매년 두 번에 걸쳐 한다. 좋아하는 매장들이 한해 지난 스타일을 대폭 할인해 판매할 때이다.
그런데 최근 그는 예외적으로 남편이 갖고 싶어한 토미 바하마 셔츠를 온라인 매장에서 샀다. 약간 입은 중고 의류들을 판매하는 웹사이트이다. “남편이 제 값 내고 사는 건 절대 반대”라고 그는 말한다.
병원 체인을 운영해 온 의료계 중역인 마르치와 대형 비영리 회사 선임 연구원인 와이드너 부부의 샤핑 습관만 보면 이들이 수백만달러를 가진 백만장자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다. 플로리다, 네이플스와 보카 레이튼의 콘도, 그리고 펜실베니아, 레바논의 단독주택 등 집을 세 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 자그마한 집들이다. 이들이 사치를 부리는 한가지를 들자면 매년 가는 이탈리아 여행이다.
이 부부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갑자기 부를 축적한 졸부가 아니라 차근차근 모아 재정적 안정을 이룬 알부자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최근연구에서 드러난 바에 의하면 최소한 한자리 숫자 백만장자들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돈에 짜다. 대단히 신경을 써서 저축하고 지출하고 투자를 한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앨버커키의 재정 조언가 도나 스킬스 사이건은 말한다. 마르치와 와이드너 부부와 같은 백만장자들에 대해 “그들은 돈을 도구로 여긴다.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그래서 함부로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떠받들어 모시지도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UBS 재정관리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행복하다. 삶에 대한 만족감이 부에 비례한다. 재산이 100만~200만 달러인 사람의 73%, 200만~500만 달러 부자 중에서는 78%, 500만달러 이상 부자들은 85%가 삶에 대해 ‘대단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들 백만장자는 그런데 돈이 충분한 데도 장시간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일을 계속 한다. 왜 그럴까를 알아보기 위해 뉴욕 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하는 재정전문가 폴 설리반이 이들 백만장자를 만나보았다. 봉급을 많이 받는 일을 하면서 지출은 줄이고 평생 저축을 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주로 한자리 숫자 백만장자들이다.
이 그룹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당대에 돈을 번 자수성가의 주인공들이다. 고액의 보수를 받으면서 번 돈을 거의 쓰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하고 투자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
앨버커크에서 부동산, 석유, 개스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스티브 잉그램(53)은 물질적 소유물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돈을 별로 안 쓰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좋은 걸 몇 가지 가지고 있기는 해요. 하지만 자동차는 보통 10년을 타지요. 10년 타고 트레이드 인 해서 새로 차를 장만해 다시 10년을 탑니다.”
대신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에 돈을 쓴다고 그는 말한다. 스티브와 아내 매리(50)는 지난여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과 조지아, 사바나에 갔고, 가을에는 뉴잉글랜드로 단풍 여행을 갔었다.
언젠가 라스베가스에 가서 카르티에 시계를 하나씩 산 것이 이들 부부에게는 진짜 호사를 부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따금 예술품에 돈을 좀 쓴다.
60대 중반의 백만장자 부부인 헤더와 존 더비 부부도 평생 꿈꾸던 드림 하우스는 은퇴가 다 되어서야 지었다. 그 전까지는 수수한 집에서 살았다. 미주리, 콜롬비아에 지은 이들의 드림 하우스는 건평 3,600 평방피트로 시내에서 15분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다.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는 것이 좋아서 집주변 반 에이커의 반원형 대지를 사들였다. 다른 집들이 지어져도 멀리 뚝 떨어져있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부자가 된 후에도 절약 습관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을 모아서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자녀들에게 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미 가진 것 이상의 소유물을 원하지 않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아니면 돈을 쓰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다고 한 재산관리 전문가는 말한다. 평생 일하고 저축만 하는 것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30만에서 2억달러 재산가들을 고객으로 하는 샌드라 브래거는 고객들에게 종종 조언을 한다. 삶을 좀 더 낫게 편하게 하는 데는 돈 좀 쓰시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정부나 운동 트레이너, 개인 요리사를 고용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경험들에 돈을 쓰는 것도 그는 추천한다.
마르치와 와이드너 부부는 한때 대저택에 빠진 적이 있었다. 큰 집에 두 번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왜 이래야 하지? 우리 둘뿐인데 이렇게 큰 공간이 왜 필요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때문에 이사를 하느라 이들 집을 팔면서 두번 모두 손해를 봤다. 그래서 집을 세채씩 갖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우선 네이플스는 부부가 영구적으로 살 집이다. 펜실베니아, 레바논의 집은 마르치의 언니와 노모가 사는 곳에서 가깝다. 마르치가 근무하는 보카 레이튼의 콘도는 값이 쌌다. 수리를 하고 살면서 내는 월 모기지가 렌트하는 것보다 싸다.
레바논의 집은 언젠가 팔 때 분명 손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9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마르치는 어머니 곁에 자주 가있고 싶었다.
백만장자이면서 양말을 꿰매 신는 이들은 정말로 그렇게 짠돌이들일까? 아니면 그런 작은 습관들이 모여 부를 축적하게 된 걸까?이들은 욕심 때문에 돈을 안 쓰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중산층이나 근로계층 출신으로 스스로를 아직도 99%에 속한다고 믿는다. 그게 그들의 정체성이다.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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