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인타운
레이건 대통령의 후임으로 백악관의 주인이었던 조지 부시(George Bush) 대통령의 단임 임기도 끝나고 젊고 미남인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이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되었던게 1990년도 초반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세 번째 젊은 40대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이었다. 당시 미국 경제는 새롭게 활기를 띄고 장기간의 호황으로 돌아섰다. 클린턴 재임기간 중 연방정부는 정부예산에서 많은 흑자를 내면서 최고의 경제적 안정시대를 이루어 내었다.
워싱턴의 한인경제도 70년대 이민 초창기의 영세성에서 벗어나 많은 상인들이 작은 상점 규모에서 기업으로 성장발전하게 되었다. 버지니아 애난데일도 이 무렵 본격적으로 한인 타운으로서의 모습을 갖추는 시기였다.
한국도 88올림픽 이후 급성장한 한국경제 상태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수출산업의 호황으로 외화반출의 규제를 완화하였다. 따라서 미주 이민자들은 생활정착금으로 많은 돈을 가져올 수 있어 새로 이민생활을 시작한 한인들이 소규모라도 바로 자영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들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생겨난 대형 슈퍼마켓이나 한국식당, 떡집, 빵집. 노래방, 미용실 등의 서비스 업종이었다.
많은 부동산 업체들과 한인 사무실들이 한인 타운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최초의 대형 한인 슈퍼마켓인 롯데 플라자도 이 시기에 페어팩스에 처음 문을 열었다.
-용(龍)이 못된 이무기, 박진 고수
당시 한의사인 김갑석(작고)씨는 페어팩스에 고려한방을 개업하면서 정식 기원도 세웠다. 버지니아 최초의 고려기원이다.
그동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바둑을 두던 동호인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로 몰려들었다. 새로운 기객(棋客)들도 많이 늘어나고 언제나 바둑 두고 싶으면 쉽게 둘 수 있는 곳이었다. 바둑 동호인들이 매우 행복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당시 혜성처럼 나타난, 하수 잡는 귀신 바둑고수가 박진 씨다. 바둑은 하수(下手)가 상수(上手)를 맞상대 하여 이기기는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력과 기력(碁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수와 하수가 바둑경기를 할 때면 치수를 조정한다. 바둑은 보통 18급부터 시작하는데 1급 정도 기력이면 아마추어로는 최고수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 치수 조정은 일반적으로 한 급수에 한 점으로 1급(상수)과 5급(하수)의 바둑경기라면 치수는 4점 선점이며 3급과 5급의 바둑경기라면 2점 선점으로 두게 된다.
그러나 박진 그에게는 이러한 치수 계산법이 통하지 않는다. 자칭 프로급수 1급이라는 그를 정치수로 계산하여 바둑 두어서는 하수들은 도저히 이겨내지를 못한다.
그나마 담뱃값이라든가 이런저런 내기바둑이라도 걸리게 되면 하수는 꽁지를 내리고 만다. 그 하고 바둑 두어봐야 이기기 힘드니, 지는 것이 두려워 상대를 안 하는 것이다.
-사귀생 통어복
그러면 그는 하수를 슬그머니 유혹한다.
“몇 점이나 깔고 두면 나를 이길 것 같아.”
하수가 이길 수 있을 만큼 치수를 조정해서 두어보자는 소리다.
옆에서 지켜보는 필자도 불안하다.
“이보게 박 고수. 그건 너무 무리한 치수 조정 같은데. 아니 1급이 무슨 수로 3급을 5점이나 잡고 둘 수 있나. 3점도 힘들 텐데.”
하지만 하수로서는 솔깃하고 반가운 소리다.
사귀생 통어복(通魚腹)이면 필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귀를 차지하고 어복, 곧 중앙까지 세력을 뻗치면 이긴다는 말이다. 해볼 만한 내기 바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터무니없는 치수의 하수바둑을 그는 이긴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바둑을 그는 이겨내는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별명이 ‘하수 잡는 바둑귀신’이다.
그는 용이 못된 이무기다. 어렸을 적에 기재가 있어 프로로 입단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 용으로 승천 하지 못하고 평생 바둑 언저리를 맴도는 이무기가 된 것이다.
하수 잡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용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
90년대 고려기원 시절 바둑동호인들이 생각난다. 원응식, 김응태, 김성봉, 이신규, 이종석, 박진, 임성우, 장경호, 김광덕, 정우백, 송제경, 고영일, 유병욱, 윤성원, 최창훈, 김학봉, 김갑석, 강만식, 안 교수, 곽한용, 유선영 씨….
choi1581@daum.net
풍운재 최환정(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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