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 경선 참여는 하느님이 유머감각을 갖춘 민주당원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민주당 대선 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캠프의 선거 전략가인 폴 베갈라가 비꼬듯 내놓은 촌평이다. 히스패닉 비하 등 각종 막말을 일삼고 있는 트럼프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제치고 공화당 후보군 가운데 선두로 오르자 민주당은 신이 났다. 공화당 경선은 욕설이 난무하는 난장판이 됐고 젊은 유권자, 소수계·이민자·무당파 등의 혐오감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도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는 아니다. 자칭 사회주의자로 민주당 경선 참여를 선언한 무소속의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연방 상원의원의 돌풍 때문이다. 그는 유세장마다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며 클린턴 전 장관을 추격하고 있다. 다급해진 클린턴 전 장관은 샌더스에 환호하는 민주당 좌파를 의식해 사회 안전망 확충, 월가 금융규제, 부자들의 편법절세 막기, 대기업 이익의 근로자 공유 등 ‘좌클릭’인 정책을 내놓았다.
트럼프·샌더스 신드롬에 대한 미 언론의 해석은 비슷하다. 일단 미 대권이 클린턴 부부와 부시 가문의 전유물로 전락하는데 대한 반감이다. 또 워싱턴 정가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 매일 싸움질이나 하고 일반 국민의 힘든 삶과 유리돼 월가·부유층의 로비스트가 됐다는 불만도 팽배하다.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베트남전 이후 최악인 것도 한 이유다. 딱히 트럼프나 샌더스가 좋다기보다는 상대 정당에 대한 증오가 대선 판도를 좌우하는데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결혼 허용, 오바마케어 실시,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등 잇따른 진보적 조치에 당황한 보수 백인들이 트럼프의 이민자 때리기에 열광하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다.
일각에서는 트럼프를 공화당의 극우, 샌더스를 민주당의 극좌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지난 2004년 트럼프는 스스로 “민주당원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실제 2012년 대선까지 민주당에 더 많은 정치자금을 몰아줬다.
또 샌더스의 주요 공약인 전국민 의료보험 시행, 유급휴가 의무화 등은 상당수 선진국은 물론 한국도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이다. 트럼프 열풍이 이민자 급증, 미국 파워 하락에 대한 보수 백인들의 좌절을 반영한다면 샌더스 현상은 부의 불평등에 대한 반감을 보여준다.
이를 테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빈부격차 심화, 소득정체, 예전 같지 않은 백인 중산층의 사회적 지위 등에 대한 불만이 미 유권자들 사이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공화당·민주당을 막론하고 기존 주류 정당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사정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특히 경제난에 시달리는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등에서 기존의 중도 정당이 몰락하고 포퓰리즘을 앞세운 극우·극좌 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우파든 좌파든 중도 정당들이 생활고를 해결하지 못하자 대안도 없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심리가 판을 치고 있다.
근본적으로 미국 등 서구 중도 정당의 위기는 세계화 피해자들을 무시해 왔기 때문이다. 우파 정당들은 대기업·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좌파 정당들은 노조 등 전통적 지지층만 보고 있다. 비정규직, 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일자리를 못 찾는 청년층, 편모 가정 등은 정치 세력화가 어려운 만큼 관심밖에 있다. 이들은 시간과 돈 부족으로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돼 있어 건전한 가치관을 쌓을 기회조차 없다. 대신 사소한 이익만 침해돼도 분노를 터뜨리며 희생양을 찾는다.
한국은 어떤가. 새누리당의 ‘합리적이고 따뜻한 보수’ 실험은 꼬리를 감췄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 복지 정당론은 구체적인 정책이 전무해 공허하기 짝이 없다. 반면, ‘일베’ 현상이나 동남아 근로자 혐오증 등은 극단주의 세력 출현의 토양이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일부 서구 국가에서 나타난 민주주의 위기는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니지만 먼 나라 얘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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