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가영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 넓은 세상을 향한 꿈을 담은 문방구, 백자청채 잉어형 ‘연적’
잉어 한 마리가 있는 힘껏 몸을 웅크렸다. 힘 좋게 펄떡이는 잉어의 모습을 포착한 이 도자기의 용도는 연적(硯滴)이다. 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적당한 양의 물을 떨어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문방구의 일종이다. 종이, 붓, 벼루, 먹 등을 지칭하는 문방사우(文房四友)와 함께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들가 늘 가깝게 두어야 하는 물건 중 하나가 연적이었다. 먹을 가까이 하는 선비들에게 먹의 농담을 조절하는 일은 중요했다. 먹물이 얼마나 물을 머금고 있느냐에 따라 종이 위에 붓이 그려내는 선의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충분한 먹물을 확보하면서 먹을 진하게 혹은 연하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벼루에 알맞은 양의 물을 떨어뜨리는 것이 관건이었고, 이를 위해 연적에는 꼭 두 개의 구멍을 뚫게 되었다. 각각 물 구멍과 공기 구멍이라고 부르는 이 구멍들은 꽉막힌 물체에 구멍이 하나만 있으면 내부와 외부의 기압차 때문에 물이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경험을 토대로 고안된 발명이었다. 학문을 숭상했던 선비들의 공간에서 연적은 이처럼 사용에만 충실한 기능품을 넘어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기호품이 되기도 하고, 개인의 간절한 바람을 담은 상징품이 되기도 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유행한 다양한 도자기 연적 중에는 잔뜩 웅크린 잉어의 모습을 한 연적이 자주 발견되는데, 이는 용문을 뛰어올랐다는 의미를 가진 등용문(登龍門)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의미가 들어있다. 옛날 중국의 황하 상류에 용문(龍門)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파른 계곡이 있었는데, 그 아래로 물살이 매우 빠르고 큰 폭포가 흐르고 있었다. 상류로 헤엄쳐 가려는 큰 물고기들이 폭포 밑으로 수 없이 모여들었으나 그 폭포를 오르지 못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온 힘을 다해 뛰어 올랐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면서 용으로 변하여 승천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진 이 이야기는 노력 끝에 성공한다는 교훈을 담아 널리 전래되었고,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단어는 입신출세(立身出世)를, 온몸을 웅크려 도약하는 잉어는 열심히 정진하는 선비들을 상징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잉어모양 연적을 찬찬히 살펴보자. 머리 옆 지느러미에 하나, 잔뜩 웅크린 배 지느러미에 하나 총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는 이 연적은 한껏 몸을 움츠리고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려는 잉어의 모습이다. 한 손에 꼭 쥐여지는 이 작은 도자 문방구 안에는 넓은 세상을 바라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정진하는 선비의 꿈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 유물은 2015년 8월 13일부터 11월 8일까지 개최하는 “Splendor and Serenity: Korean Ceramics from the Honolulu Museum of Art”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Honolulu Museum of Art
900 South Beretania Street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이미지 정보>
1. Carp-shaped Water DropperKorea, Joseon dynasty, late 19th - early 20th centuryPorcelain with cobalt blue underglaze decorationGift of the Mrs. E. Won Sik You, 1960 (2743.1)백자청채 잉어형연적조선시대 19세기 말- 20세기 초1960년 E. 유원식 여사 기증 (2743.1)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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