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영광(여진구)은 소년병으로 인민군에 입대해 전차부대에 배속된다. 남복(설경구)은 국군 ‘중년병’으로 착출돼 1급 기밀문서를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두 병사가 각각 속한 남과 북의 부대는 이동 중에 적의 공격을 받고 영광과 남복은 홀로 남겨진다. 탱크를 잃으면 총살이라는 상관의 말에 영광은 어떻게든 탱크를 몰고 북으로 돌아가려 하고, 기밀문서를 잃어버린 남복은 문서를 찾아 부대로 돌아가려 한다. 길을 헤매던 두 사람은 우연히 마주치고 영광이 기밀문서를 손에 넣었다는 걸 안 남복은 영광을 필사적으로 쫓는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두 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서부전선’(감독 천성일)을 전쟁영화라고 말하긴 힘들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건 한 대의 탱크 안에서 적과 동거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처한 두 인물이 만들어 내는 코미디다. 이 영화에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두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 ‘고지전’(2011)의 설정과 주제의식 등이 옅게 깔려있다. ‘서부전선’이 두 작품과 다른 건 전쟁을 다루는 방식. 앞선 영화들을 전쟁영화로 구분할 수 있는 건 전쟁 자체에 관한 고민이 담겼기 때문이다. ‘서부전선’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의 전쟁은 영광과 남복의 코믹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도구다.
‘서부전선’이 전쟁을 코미디의 도구로 쓰고 있다고해서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이런 영화가 있으면 저런 영화도 있는 법. 각 영화는 스스로 추구하는 목표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서부전선’의 목표는 물론 ‘관객 웃기기’다. 이 영화는 꼼수나 속임수를 쓸 줄 모른다. 영광과 남복의 우연한 만남, 충돌, 대립, 탱크 안에서의 동거와 대립, 몇 차례의 전세 역전,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 발생, 화해, 이별 등 관객이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그 안에 각각 코믹한 에피소드들과 슬랩스틱 코미디, 말장난을 집어넣는다.
천성일 감독은 코미디를 위해 이야기의 개연성 혹은 서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서부전선’은 같은 콘셉트의 꽁트를 나열하기만 한다. 영광과 남복은 장소를 바꿔가며 반복해서 투닥거리며 개그 소재를 찾는 데 골몰할 뿐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 자리를 맴돈다. 의아한 부분은 천성일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로 ‘추노’ 같은 뛰어난 드라마, ‘도망자 플랜B’ ‘7급 공무원’ 같은 수준급 드라마의 각본을 썼다는 것. 하지만 천 감독은 영화로 장르를 옮기면서 ‘해적:바다로 간 산적’ ‘5백만불의 사나이’(가수 박진영 주연) 같은 서사가 실종된 각본을 쓴다. ‘서부전선’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 안에 기억할 만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면 영화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부전선’은 관객을 웃기는 데 어느정도 성공한다. 이 성공은 극을 이끌어 가는 설경구, 여진구 두 배우의 연기력에 기댄 부분이 크다. 뻔하디 뻔한 ‘서부전선’의 개그를(게다가 조악한 소품과 컴퓨터 그래픽이 난무하지만) 두 배우는 좋은 호흡으로 살려낸다. 설경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연기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여진구는 처음 도전하는 코미디 연기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뽐낸다. 하지만 설경구와 여진구는 이것보다 두, 세 단계 높은 수준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이다.
작정하고 완전한 코미디로 영화를 마무리했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서부전선’은 ‘웃음 80 감동 20’의 클리셰로 극을 끝낸다. 이야기의 부재, 슬랩스틱 코미디와 억지 감동으로 관객을 당혹스럽게 하는 영화 ‘서부전선’에 이상있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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