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
우리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아이들은 지금 많이 자랐다. 감사하게도 잘 자라 주었다. 딸인 큰애는 스물세 살, 아들인 둘째는 스물한 살이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은 아직 학생이다. 둘 다 등록금 외에는 스스로 돈 벌어 일하며 학교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다. 도와줄 여력의 경제적 형편이 안 되는 부모 입장을 고려해 힘들어도 알바를 뛰며 생활비 벌어 학교를 다녔으니 참 고마울 일이다.
하지만 완전 자립은 아니다. 특히 큰애는 이젠 어쨌든 자립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도 이게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모양이다. 학교 다닐 때 나가 살았던 걸 청산하고 얼마 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장이어서도 그렇지만, 그 중에 명백한 한 가지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돈을 더 모으고 싶어선 것 같다. 부모 집에 들어와 사니 월세를 꼬박꼬박 내야 하는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딸은 나가 살면서 유기농 건강음식만 챙겨 먹었다. 가끔 우리가 패스트푸드를 먹고 있으면 그런 거 먹지 말라며 호통치곤 한다. 그러면서, 냄새도 이상하고 맛도 이상한 유기농 드링크를 사다 주며 이걸 마시라고 한다. 그럴 땐 우리는 먼저 가격표부터 본다. 보통 비싼 게 아니다. 조그마한 병에 담긴, 평소 듣도 보도 못한 과일즙 주스의 가격이 웬만한 패스트푸드 점심 가격이다. 이럴 때 우리 부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누가 좋은 줄 몰라서 안 사 먹나, 비싸서 못 사먹지….
단지 음식 사먹는 것만이 아니다. 걔 돈 씀씀이를 지켜보면 공포영화를 보는 것도 아닌데 스릴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친구 생일선물이라고 사들고 오는 물건들을 보면 우린 엄두도 못내는 비싼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밥 사줄 때도 얼마나 화끈하게 잘 쏘는지, 지켜볼 때마다 초조하기가 그지없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부부 또 한 마디 내던진다. 쟤가 아직 월 페이먼트 스스로 안 내 봐서 속을 몰라요….
근데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딸애가 뭔가 속을 좀 안 것 같은 눈치다. 얹혀살고, 묻어 살고, 기대고 살고, 그리고 그런 식의 삶을 당연시 여겨왔던 것에 대한 현실적인 반성을 하고 있었다. 또 비슷한 시점에, 아들도 신앙의 좋은 멘토를 만나면서 자립하는 삶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그때부터 자기 스스로 스시집 웨이터로 일하며 완전자립의 길을 열려고 시도하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요사이 제일 감사한 건 바로 이거다. 아이들이 드디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걔들이 산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깨달아가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걸 당연시 여기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된 것. 이런 통계가 있단다. 인생 후반부에 결혼 안 한 싱글족과 결혼한 커플족의 저축액수를 비교해 보았더니 싱글족의 잔고가 커플족의 그것보다 훨씬 더 밑이라는 결과다. 싱글들이 결혼을 주저하는 이유가 싱글인 게 더 편해서다. 견제가 없다. 균형을 맞출 필요도 없다. 자기 맘대로 먹고 싶은 것 사 먹고, 사고 싶은 것 살 수 있다. 반면, 커플족은 자기 맘대로 못한다.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상대의 눈치를 봐야 한다. 더 중요한 걸 위해 덜 중요한 데 돈 쓰는 걸 내려놓기도 한다.
그러므로 결론은, 사람에게는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 딸은 집에 들어오면 부모의 잔소리가 자길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서 맘대로 사는 것보다 부모를 상대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사는 게 자기에게 더 유익임도 알고 있는 듯하다. 즉 나가 살아보니 그게 아니구나, 바로 이 중대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맞다. 살아보니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것, 얼마나 중대한 인생 발견인지 모른다. 가끔 이 중요한 진리를 너무 늦은 나이에 깨닫는 자들도 본다. 그럴 땐 남는 건 후회뿐이다. 그래서 이 진리는 이른 나이에 빨리 깨달을수록 더 좋다. 살아보니, 그게 아니구나! 정말 맞는 말이다. 이를 다 살아보고 깨닫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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