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마트에 또 하나 규제의 족쇄가 채워졌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문구류를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대형마트에서 연필·연습장·지우개·물감 등 18개 학용품을 낱개로 팔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용품을 낱개로 사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형마트에 영업제한 조치를 가한 셈이다.
“골목 문구업체보다 문구 전문 프랜차이즈와 생활용품 전문매장들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문구업계와 대형마트의 반발은 차치하고 “소비자의 불편을 염두에 두지 않은 처사” “문구점 없는 동네는 호구냐” “문방구 일찍 문 닫는데 큰일이네” 등 네티즌의 십자포화는 이번 결정이 반시장적이라는 점을 웅변한다.
경제 성장률을 갉아먹을 만큼 심각한 소비위축을 초래할 뿐 아니라 소비자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사회적 비용만 유발한 ‘대형마트 일요 의무 휴무제’처럼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로만 재단한 ‘규제를 위한 규제’와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둬서인지 요새 이런 규제의 망령이 부쩍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아웃릿에 대해 골목상권 보호를 빌미로 오히려 규제의 칼을 들이대거나 막대한 고용효과가 예상되는 금융서비스 규제와 적폐 해소는 눈감은 채 은행 수장들의 팔목을 비틀어 급여를 깎아 청년 취업을 지원하겠다는 시늉들이 그렇다.
경기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데도 제조시설 가동을 옥죄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및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강력한 온실개스 배출권 거래제 등 역시 과도한 규제로 거론된다. 특히 당사자인 국회의원은 쏙 빠지고 애꿎은 언론인과 교원을 포함해 전 국민의 3분의 1가량을 잠재적 범죄자로 삼으려는 김영란법이야말로 본질을 외면한 비합리적 규제의 허상이라는 지적이다.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든 터무니없는 규제가 우리나라에 유독 많은데는 아마 ‘규제 3적’(敵)이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으뜸의 적은 단연 정치인이다. 최근 자유경제원 분석에 따르면 이번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경제관련 법안 10건 중 7건이 반시장적이었다. 게다가 의원 입법 건수는 1만5,000여건으로 역대 최다다. 동반성장·상생이라는 미명 하에 기업과 시장을 역행하는 규제 일변도의 법안을 쏟아낸 결과다. 민생법안은 내팽개친 채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데만 혈안인 정치권에 ‘규제 온상’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공무원도 규제 척결의 대척점에 선 공공의 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을 단두대에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규제가 풀렸다는 얘기는 감감무소식이다.
이는 정부 부처마다 규제가 이해관계로 촘촘히 얽혀 있는데다 협의시간을 끌다 보면 대통령의 서릿발도 사그라지면서 결국 흐지부지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기업 관계자들은 “임기 5년인 대통령보다 정년이 보장된 9급 주사의 말이 법”이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중소상인들을 대표한답시고 이기주의에 함몰된 무늬만 소상공인 단체도 규제 혁파의 걸림돌이다. 전통시장 살리기를 내세우면서 거액의 보상비를 요구하는 일은 관례가 됐고 대형 유통매장을 건립 중인 지역마다 규제를 들먹이는 반대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어느 나라에서 백화점 짓는다고 주변 상인들한테 돈을 주느냐”고 읍소한다. 특히 일부 단체장들의 경우 번듯한 사업체를 영위하며 부를 쌓았어도 약자의 대변인으로 떵떵거리고 일부는 위법적인 활동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치권은 300만 소상공인의 표를 의식해 시대착오적 주장에 동조해 동반성장이 아닌 동반침몰을 조장한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은 1863년 게티즈버그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통합의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2015년 대한민국에서는 “규제의, 규제에 의한, 규제를 위한 정부는 영원할 것”이라는 비통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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