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비융자로 졸업시켰는데 일자리 못 잡고 빨대생활
▶ 차 사고 여행 ‘카드 펑펑’ 뒷바라지하다 파산 속출

대학을 졸업한 백수 딸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버지니아 일리아노는 “노후자금이 바닥이 나버렸다”고 털어놓았다.
[대졸 백수 급증… 피멍 드는 부모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성인자녀들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여년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 어엿한 독립체로 키웠지만 여전히 탯줄을 떼지 않고 지내는 ‘빨대형 자녀’들이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대체교사 버지니아 일리아노(55)는 값비싼 사립대학에 진학한 딸을 졸업시키느라 골병이 들었다. 그러나 대학만 졸업시키면 제 밥벌이를 할 줄 알았던 딸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홀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20대 대졸백수는 씀씀이도 컸다. 엄마의 코사인을 받아 차를 리스했고, 백화점을 돌며 수시로 옷을 사들였으며, 해마다 친구들과 바캉스 여행을 즐겼다. “취업에 대비해(?)” 손톱, 발톱 치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크레딧카드로 긁어댄 이 모든 비용은 고스란히 엄마인 일리아노의 몫으로 돌아왔다.
일리아노는 행여 딸아이가 의기소침해질까 걱정스러워 잔소리 한 번 하지 못했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잡아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든든한 경제적 두 다리”를 갖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딸에게 다리가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일리아노가 비축해둔 노후자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은퇴시기를 늦추던가 아니면 딸의 학자금 융자를 위해 저당 잡힌 집을 처분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일리아노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한 부모는 한두 명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대리 대출, 현금증여 혹은 각종 경비 대납 등을 통해 성인 자녀들을 뒷바라지한다.
자립에 실패한 자녀들에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도움을 제공하다보면 노후자금이 거덜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허리띠를 졸라매가며 ‘못난 자식’ 끌어안으려다 기어이 파산하고만 노부모도 수두룩하다.
대졸 백수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각종 보고서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임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충분한 노후자금을 비축하지 못한 베이비부머 세대 부모들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노후가 불안한 부모가 성장한 자녀를 다시 품어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시카고 소재 MNH 크레딧 솔류션스의 공인 부채상담원인 네티바 허드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기에 자식 뒷바라지에 이골이 난 부모들은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홀로서기에 실패한 아들의 신용카드 빚과 딸의 렌트비를 떠맡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10년간 잔뜩 위축된 노동시장은 밀레니얼 세대에 속한 젊은이들에게 넉넉한 취업기회를 제공할 만큼 회복되지 않았다. 고학력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반면 ‘자식농사’에 올인한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은 전통적인 연금이 위험부담이 큰 401(k) 등으로 대체됨에 따라 재정규율이 반듯하게 잡힌 생활을 이어가지 않으면 노후를 보장받지 못할 아슬아슬한 형편에 놓여 있다.
‘장수시대’를 맞아 잔여 예상수명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은퇴 후 의료경비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일터에서 밀려난 중늙은이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제대로 된 은퇴 후 재무설계를 세운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노후자금을 헐어 장성한 자녀에게 퍼주는 부모들이 증가세에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등이 켜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대가 차례로 해결사로 나선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플로리다주 오렌지시티에 거주하는 재클린 맥클런(74)은 빈둥대는 손자들을 돕기 위해 수년간 만만치 않은 경비를 부담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의 은퇴자프로그램 분석가로 활동한 그녀는 자신의 연금을 부숴 손주들의 댄싱스쿨 학원비에서 디즈니랜드 여행 경비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지출을 책임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맥클런은 2011년 파산상태에 빠졌다.
그래도 그녀는 “어려운 시간을 넘길 수 있도록 손주들을 돕는 것은 할머니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손주들이 힘든 생활을 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맥클런은 “아이들이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의 쪼그라든 말년은 회복되지 않았다.
경제적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어려운 입장에 처한 가족구성원에게 큰 힘이 된다. 문제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일손을 놓은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노후 기반을 헐어가며 무분별한 퍼주기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미주리주에 기반을 둔 플랜코의 재정상담원인 피터 라자로프는 장성한 자녀에게 무작정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말고 대신 ‘가정 대출’을 해줄 것을 권한다.
구체적 대출조건과 정기 페이먼트 납기일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부모 명의의 채권을 발행하라는 얘기다. 물론 이자율도 정해야 한다.
돈을 빌리는 자녀는 변호사가 입안한 계약서에 서명해야 한다. 계약서에는 미처 상환하지 못한 빚은 미래의 상속분에서 공제한다는 조건도 달아야 한다.
플로리다에서 파이낸셜 사이콜로지 코퍼레이션을 운영하는 캐슬린 거니는 “채무자를 딸이나 아들이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계약서는 대출조건, 상환기한과 체납시의 조치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처리과정이 객관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된 대출은 제 역할을 해 낸다”고 덧붙였다.
거니는 “노부모가 다 큰 자녀들을 돌보다 경제적으로 거덜이 나버리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았다”며 “내게 상담을 청해온 한 커플은 이혼한 아들의 전처와 자식들을 지원하기 위해 식당의 파트타임 종업원으로 재취업했다”고 소개했다. 그녀는 “무리한 재정지원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결혼생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일부는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환능력이 없는 성인 자녀에게 ‘패밀리 론’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패밀리 론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제대로 상환된 케이스는 상당히 드물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직접 돈을 건네주지 말고 인맥구축이나 일자리 물색에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일단 현금증여나 대출이 이루어지면 스스로에게, 또 자녀에게 정직해야 한다.
아메리칸 칼리지의 탐 홉킨스 교수는 “궁한 처지의 자녀에게 무조건 퍼줄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 것인지 계획해야 한다”며 “주저앉은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면 ‘맹목적 사랑’이 아닌 ‘엄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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