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분주함도 이제 몇일이면 끝이 난다. 굳이 쇼핑몰에 가지 않아도 도로에 늘어난 차량 행렬과 빠르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마음이 함께 분주해진다. 불청객처럼 찾아드는 단체 카톡문자와 비디오 메시지들이 반가움보다 씁쓸함으로 다가오는건 왜 인지… 마치 시장을 파장하며 떨이로 묻어 팔리는 물건처럼 마음과 정성이 빠진 단체문자가 빈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쇼핑몰로 몰리고 바쁜 연말이 다가오니 많은 분들이 상담소가 좀 한가하리라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지난 4년 동안 가정상담소에서 일한 경험을 돌아보면 11월 중순부터 상담이 늘어나 12월과 1월에는 하루에 6-8명을 연달아 만날 정도로 바빠진다. 서머타임이 끝난 11월부터 해가 짧아져 일조량이 확 줄고, 퇴근 할 때 밖이 어두워 마음이 가라앉고 우울해지기가 쉽다.
또한 연말 모임과 파티 소식이 방송과 신문을 가득 채울 때,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거나 갈 수 없는 형편과 처지에 놓인 사람들 마음에는 소외감과 초라함이 밀려든다. 가족이 없는 사람은 다른 가족 모임을 보면을 보면서 스스로 외롭다 느껴 우울하고, 반면 가족들이 많은 사람들은 땡스기빙 이후 잦은 가족 모임으로 인해 불편한 가족과의 충돌과 상처로 힘들어 한다. 화려한 성탄장식과 분주함 뒤에 숨겨진 이런 저런 이유들로 상담이 폭증하는 연말이다.
지난 한해도 많은 힘든 분들을 만났다. 새파란 청년 아들을 심장마비로 떠나보낸 부모, 가족이 한국과 미국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경험한 부부, 경제적 몰락으로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가정, 관계의 단절과 쓰디 쓴 실연과 상실의 아픔으로 죽음을 맛본 이들,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온 아내 등 죽음의 골짜기를 걷고 광야를 지나는 그 분들을 견디게 해준 희망과 격려의 말들이 있었다.
많은 분들이 “이 것도 지나가리라”를 붙잡고 버티어 왔다. 그 분들이 버티던 ‘지나가리라’던 미래의 소망이 이제는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주었다. ‘Hang tough’ 또는 ‘Hang in there’란 영어 표현처럼 그냥 붙어있기만 하면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른다. 내가 버틸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힘이 되는 글을 읽고, 때론 하고있는 일에 몰두하면서 이렇게 한해의 끝까지 올 수 있었으리라.
막연한 불안감에 눌려사는 이들과 지나간 것에 대한 상처와 후회로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자주 나눈 말은 ‘지금, 여기를 (Here & Now) 사세요’다. 과거의 일도 미래의 일도 모두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영역임을 인정하고, 지금 내가 힘을 가지고 있는 ‘현재’를 의식적으로 인식하며 살기를 독려한다. 한달 후나 일년 후를 보면 어떻게 사나 막막하여 불안과 걱정에 마음이 깔리지만, 매일 오늘 ‘하루’만 생각하고 살면 하루는 견딜 수 있으리라. 특히 너무 힘들 때는 하루살이 처럼 하루만 생각하고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할 수 없쟎아’도 주어진 현실을 결국은 받아들이도록 돕는 말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씨름하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쟎아’를 고백하며 let go 하는 일, 이 시점에 한번 쯤 필요한 작업이리라.
흐르는 세월에 1년씩 대나무 같은 마디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제 올해란 마디를 접고, 새 마디를 잘 시작할 준비를 하자. 지난 일년 동안 우리 모두 참 애썼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래에 눈물이 핑 돌며 앞이 흐려진다. 지난 한해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전화로 이메일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그대 아픈 기억을 모두 그대 가슴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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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76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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