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제한 휴가제가 나온 배경은? 작년 상장기업 6,560억 달해 실리콘 밸리, 비용절감책 관심
▶ ‘휴가 마음대로’ 규정 해도 “ 근로자 어차피 못 써” 계산도
해마다 연말은 근로자들의 휴가원이 폭주하는 시기다.
남은 연차 휴가 일수의 다음해 이월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일수록 직원들의‘ 막판 휴가’가 러시를 이룬다.
연차 휴가는 해당연도에 모두 사용해야 하며 미처 소진하지 못한 휴가일은 잃어버리게 되는 이른바‘ use it or lose it’ 원칙을 정한 회사에서 사원들의 연말 ‘막차타기 휴가’가 되풀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면 종업원들에게 미사용 유급 휴가의 이월을 허용하는 기업들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직원들의 누적휴가로 남몰래 ‘속앓이’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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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휴가 이월을 허용하는‘ 양심적’인 회사들은 대부분 누적휴가 일수를 돈으로 환산해퇴직 때 정산해 주는 제도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휴가 사용 일수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어딜 가나 평직원들은 휴가를 꼬박꼬박 찾아먹으려 든다. 이에 비해 직장 내 서열이 상위권에 속한 임원일수록 ‘자의반 타의반’ 휴가를 잊고 사는 쪽으로 기운다.
블룸버그의 최근 보고서는 일부 대기업 총수들이 휴가를 가지 않는 통에 퇴직 때 회사가이들에게 지불해야 할 미사용 유급휴가 수당이이미 여섯 자리 숫자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인물이 퀄컴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븐 몰렌코프다. 그는 오늘 당장 회사를 그만둘 경우 미사용 유급휴가 수당으로 18만5,177달러를 받게 된다.
HCA 홀딩스의 CEO R. 밀턴은 2014년 말 기준으로 15만2,308달러의 휴가 미사용 수당을 적립해 놓았다.
홀푸즈의 공동 CEO 월터 롭은 취임 후 이제까지 2,703시간에 해당하는 유급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 돈으로 환산하면 61만3,836달러에 해당한다. 물론 이 돈은 회사를 떠날 때 전액 환불받는다.
홀푸즈의 대변인 마이클 실버맨은 “중역들을 포함한 회사의 팀 멤버 전원은 퇴직 때 축적된 미사용 휴가수당을 일괄적으로 지급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롭 최고경영자의 미사용 휴가시간은회사를 향한 그의 헌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버맨 대변인은 또 홀푸즈의 현금보상은 풀타임 직원 평균 연봉의 19배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대기업 CEO들이어마어마한 액수의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평직원의 평균임금에 비해 수백 배에 달하는 연봉을 챙기면서 유급휴가까지 또박또박 찾아먹는 것은 사실 직원들 보기에도 민망스럽다.
게다가 홀푸즈와 마찬가지로 많은 기업들은직장 사규나 주법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퇴사하는 직원들에게 미사용 연차휴가 수당을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
홀푸즈 근로자들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 매년 미사용 휴가수당을 실제 가치의 75% 수준에서 현금화해 수령할 수 있다. 현재 홀푸즈와같은 유급휴가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 중역들의 보수에 관한 컨설팅을 제공하는 펄 메이어 & 파트너스의 매니징 디렉터 피트 루포는 “미사용 휴가수당으로 상당한 액수를 손에 넣은 직원들은 그들 역시 CEO와 동일한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연봉에서 최고경영자와 평사원 사이에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최고위직 인사의 미사용 휴가수당의 누적은 회사 측에 상당한부담이 된다.
CEO가 회사를 그만 둘 때까지 휴가 미사용수당이 계속 ‘부채’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증권거래위원회(SEC) 접수된 114개 상장기업의 문건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미사용 연차수당 경비 총액이6,560억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근로자 1인당 미사용 휴가수당 평균액은1,898달러로 조사됐다.
야후 운영담당 최고책임자로 불과 15개월간 활동하다 올해 퇴사한 헨리크 드 카스트로는 엄청난 퇴직금에 미사용 휴가수당으로 2만9,491달러를 추가했다.
36년간 웨어하우저에서 근속한 후 지난해사임한 헨리크 드 카스트로 역시 천문학적 규모의 퇴직금과 함께 미사용 연차휴가 수당으로 12만9,063달러를 챙겼다.
이렇듯 중역들에게 휴가 미사용 수당으로 만만치 않은 액수를 지급하는 사례를 지켜본 기업들은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들이 최고위직과 전문직 근로자 그룹을 겨냥해 만든 ‘무제한휴가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시카고 트리뷴과 LA타임스를 소유한 트리뷴 퍼블리싱을 비롯, 일부 대기업들이 채택한이 제도는 회사 측이 직원들에게 연차휴가 일수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들에게 원하는만큼 휴가를 갈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한다.
트리뷴의 대변인은 “무제한 휴가제는 유급휴가 사용에 관한 융통성을 확대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직장일과 사생활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잡는 결정권을 종업원들에게 돌려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종업원들에게 유리한 제도인지는 분명치 않다.
미국인들은 지정된 휴가일수의 4분의 3만을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마음대로 휴가를 쓰도록 맡겨두어도 경영진 입장에선 별로 걱정할게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근로자들은 늘 칼날을 쥐고 있는 쪽에 서있다. 지정된 휴가일수를 모두 소진했다가일자리를 잃거나 승진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다.
특히 못된 보스를 둔 직원들은‘ 윗전의 압력’이 없어도 알아서 낮은 포복자세를 취하게 마련이다. 자칫 눈 밖에 났다가는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라는 생각에서다.
트리뷴은 직원들의 자발적 휴가단축을 염두에 두고 무제한 휴가제를 채택한 것이 절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트리뷴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돌린 내부 메모에는 “휴가원을 내기 전 본인의 휴가가업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수퍼바이저와 솔직한의견교환을 거치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다. 늘그렇듯 미래의 커리어 기회는 업무성적과 잠재력를 토대로 평가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눈치 볼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 유급휴가를 즐기라는 무제한 휴가제의 표면적 ‘기본 취지’와는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에 관해 전문적으로상담하는 에이온 헤윗의 파트너 캐롤 슬레이덱은 “정해진 유급휴가 일수가 따로 없다면 회사로선 미사용 휴가수당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많은 고용주들은 최고위 간부 직원들을 겨냥해 이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다.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을 챙기는 최고위 중역들은 당연히 몸값이 비싸다. 이들의 시간당 임금을 계산해 미사용 휴가수당을 책정하면 만만치 않은 수치가 나온다.
연차휴가 일수를 정해둔 기업의 고용주들은중역들이 유급휴가 사용현황을 꼼꼼히 체크한다. 하지만 업무 공유가 불가능한 최상부 임원들은 어차피 휴가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퇴사 때 상당한 액수의 미사용 휴가 수당을 지불해야 한다.
무제한 휴가제를 채택하지 않은 기업들은 종업원들에게 휴가 일수를 소진하라고 안달을 부린다.
헤이 그룹의 미국시장 팀장인 데이빗 와이즈는 “종업원이 또박또박 휴가를 가면 결과적으로 회사와 당사자 모두가 이득을 보게 된다”고말했다.
회사 측은 장부에서 미사용 휴가 괸련 경비를 털어낼 수 있고, 직원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재충전된 상태에서 업무에 복귀한다.
와이즈는 “해마다 4분기로 접어들면 종업원들에게 휴가를 종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말 결산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종업원들이 휴가를 가는 것이 가지 않는 것에 비해 경비면에서 절약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당연히 CEO들에게도 제때 휴가를가도록 강권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상장된 대기업의 총수들은 쉴 틈이 없다.
펄 메이어의 루포는 “CEO는 자리의 성격상 1주일에 7일을 근무한다”며 “그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근로시간의 개념이 모호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CEO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일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강조하고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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