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상과학소설을 건축으로 실현시킨 제도공(하)
▶ 건축제도공 조지 와이먼 유일한 작품 ‘브래드베리’ 완공 못 보고 세상 떠나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100여년 전, 과학소설서 영감 받아 설계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100여년 전, 과학소설서 영감 받아 설계](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6/03/09/20160309104518561.jpg)
브래드베리 빌딩 중정의 유리 지붕. 유리 지붕을 통과한 햇살이 중정을 밝게 비춘다.
당시 조지 와이먼은 32세의 늦은 나이로 건축사도, 디자이너도 아닌단순한 건축제도공(draftman) 이었다.
그의 직책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것이 아니라, 남이 그린 그림을 도면으로 옮기는 단순한 일이다. 건축사나 디자이너가 아닌 제도공이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건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재미난 건 그의 안이 건축주에게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뽑히긴 했는데 처음에는 그가 브래드베리와 계약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건축주로서는 무척 당황스런 상황이었다. 남들은 건축주와 설계 계약을맺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사탕발림을 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설계비가 적어서 그런 것같지는 않았다. 구전되는 소문에 의하면 그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마침 그의 죽은 동생이 꿈에 나타나 계약을 하라는 언질을 한 후에야 설계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추측하건데 아마도 와이먼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혼자서 건축설계 내공을 쌓고 있다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인연을 만나 꿈을 이룬 것 같다. 정말 영화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데, 이런 일이 100여년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럼 와이먼은 어떻게 설계를 했길래, 건축주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까?그는 1880년대의 공상과학소설에서영감을 얻었다. 당시 그는 1887년에출판된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 보면서’ (Looking Backward)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 책은 서기 2000년의 미래 문명에 대해 상상하는 내용이다. 물론 2000년 실제의 상황과는맞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도 10년 후를 예측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19세기 말에100년도 훨씬 지난 미래(우리에게는오늘의 상황)를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실제 가능한 미래를 예측한다기보다, 작가가 꿈꾸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에 가깝다고 하겠다. 미국에서는 출판 당시 베스트셀러 3위로뽑혔고 현재에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유명서적 중 하나이다.
이 책에 전형적인 상업건물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빛이 가득 찬거대한 중정이 있는데 벽에서 뿐만 아니라 돔으로 된 천장에서도 빛이 내려온다. 그 돔의 꼭대기 높이는30m나 된다. 그리고 벽은 부드러운색으로 프레스코 처리가 되어 있어서 풍부한 빛이 없어도 실내 분위기가 아주 온화하다’고.
이 부분은 브래드베리 빌딩의 아트리움(유리 지붕이있는 중정)과 거의 일치한다. 와이먼은 이 소설 속의 건물을 마음 속에 품고 설계할 때 실제 건축으로 옮겨 놓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브래드베리 빌딩 중앙에 있는 아트리움은 중정 위에 유리 천장을 만들어 인공조명 없이 햇빛으로 가득 찬공간이다. 따사로운 중정은 복도로 둘러싸여 있고 두 개의 엘리베이터가 중정을 등지고 서 있다. 엘리베이터 섀프트는 벽이 아닌 가느다란 철제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서 빛을 가리지 않고 투과한다. 그리고 중정을 감싸고 있는 모든 철제 레일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후 시카고 국제박람회에서 전시됐었던 것들로 품질이우수한 제품들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이다.
브래드베리 빌딩의 외부는 중정에비해 상대적으로 장식을 별로 하지않았다. 다른 건물들은 모두 몇 십년 후 새로 지어진 반면, 브래드베리빌딩은 100년이 지났어도 단아한 자태로 서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분위기가 나는 갈색 벽돌과 사암 테라코타 정도가 특이한 요소라고 하겠다. 주변과 너무도 잘 어울리게 소박해서 보통 지나는 사람들도 이 건물이 유명한 건물인지 잘 모를 정도다.
반면에 내부는 상당히 공을 들였다. 브래드베리의 바람대로 모두가 당시의 최고급 재료들이 쓰여졌다. 전세계의 유명 자재를 사용하다 보니 배달사고는 비일비재했다. 공사 일정이 연기되는 것도 다반사였고, 공사비도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했다.
예상비용의 3배인 총 50만달러를 쏟아 부었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브래드베리는 이 건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꺼이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들인 건물을 아쉽게도 그는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하고눈을 감았다. 완공하기 수개월 전이었다. 훌륭한 건축주 덕분에 유능한건축가가 빛을 보고 훌륭한 건물이 들어설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브래드베리 빌딩이 와이먼의 유일한 작품이란 사실이다.
이 작품은 동시대에 지어진 어떤 건물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걸작이다. 이후 와이먼은 우편으로 건축 수업을 들으면서 건축을 보다 체계적으로 익히려고 했지만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첫작품이 그의 대표작이자,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고, 이 뒤로는 다른 어떤 건축주와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건축주와 밀고당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관련된 뒷이야기 하나‘.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국인으로서 촬영 당시 LA가 낯선 곳이었다. 제작진이 영화의배경으로 여러 다른 건물을 소개해 주었는데 이 중에는 별로 흥미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브래드베리빌딩을 소개하자 감독과 스탭들은 바로 이 건물이라고 답을 해 주었다.
이런 걸 보면 건물과 사람 간에도인연이 있는 듯하다. 건물의 내부는 화사한 분위기이지만 영화 자체가 음산하다 보니 이 건물도 어둡고 안개가 자욱하게 촬영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브래드베리 빌딩이 영화에 나오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건물의 나이로 100년 정도 된1991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120년이 넘었지만 요즘 지어진 건물에 비해 전혀 초라하지 않고, 품위를 느낄 수 있는 훌륭한 건물이다.
<건축가 김태식>블로그 http://m.blog.naver.com/geoc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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