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G 그룹 2세 경영자 데이빗 갬블 겨울 별장
▶ 찰스 그린^헨리 그린 형제 예술 작업 등 건축도 설계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갬블 저택, 일본 문화·예술 공예 운동 영향받은 대표 주택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갬블 저택, 일본 문화·예술 공예 운동 영향받은 대표 주택](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6/03/30/20160330110330561.jpg)
미국에서‘ 예술 공예 운동’ (Arts and Crafts Movement)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주택으로 갬블 저택이 주저 없이 꼽힌다.
갬블 저택은 세계적인 대기업 P&G 그룹의 2세 경영자 데이빗 갬블 부부가 1909년 패사데나에 지은 겨울 별장이다. 이들의 본가는 그룹 본사가 있는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에 있었다. 1895년 은퇴한 이들 부부는 겨울이 되면 대륙을 건너와 패사데나에서 춥지 않은 겨울을 보냈다. 10년 남짓 겨울에 머물면서 이곳이 맘에든 부부는 아예 겨울 별장을 짓기로 한다.
헌팅턴 도서관 인근 등 여러 곳을 둘러보고 나서 1907년 현재 갬블 저택이 있는 대지를 구입했을 것이다. 당시 이미 이 주변에는 멋진 고급 주택들이 많아서 앞을 지나는 오렌지 그로브길을 백만장자의 거리(Millionaires’Row)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부부가 아직 건축가를 정하지 않았는데 때마침 옆 대지에서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보아오던 일반적인 미국의 집과는 달리 통나무를 맞춰 정교하게 집을 짓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부부는 현장에서 건축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건축가는 찰스 그린과 헨리 그린 형제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인근에 지은 주택들도 소개하고 직접 만든 가구 같은 소품도 보여 주었다. 형제의 일관되고 인상적인 작업에 매력을 느낀 부부는 주택 설계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린 형제는 두 살 터울로 어릴 때 부터 학교를 같이 다녔던 것 같다. 십대 시절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교에서 중고생들을 위한 건축 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이때 목공예와 목구조를 배우고‘ 예술 공예 운동’ (Arts and Crafts Movement)를 접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 공예 운동이 생소한 사람을 위해 잠깐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영국에서 18세기 말 시작된산업혁명은 19세기 중반에 그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윌리엄 모리스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공장에서 기계로 대량 생산된 제품에 반기를 들고 장인에 의해 만들던 시절로 돌아가자고 주창했다. 이 운동은 재료의 물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물성에 맞는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자는 일종의 신예술 운동이다. 나중에 프랑스의 아르누보나 독일의 바우하우스에 큰 영향을 끼친다.
목구조를 통해 건축에 흥미를 느낀 그린 형제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서 MIT 건축과에 진학한다. 당시MIT는 미국 내에서 프랑스의 보자르식의 고전 건축을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리스 로마 건축에서 시작해서 비례와 좌우 대칭, 그리고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건축을 설계하도록 가르쳤다. 보자르 교육은 그림에서 보다시피 재료의 특성보다는 형태를 중점으로 설계했다. 그린 형제가 생각하던 건축과 대학에서 가르치던건축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예술 공예 운동 스타일을 원했을 것이다. 졸업 후 보스턴의 여러 설계사무소에서 2년 정도 실무를 익히다가 부모님이 새로 정착한 패사데나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그린 형제는 대륙을 횡단하는 도중에 시카고에 들러서 1893년 세계박람회를 구경하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지 400주년을 기념하고 발전된 미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성격의 거대행사였다. 대부분의 건물은 보자르식으로 지어졌다. 대개 일반인들은 이런 스타일의 건축물을 보면서 정통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린 형제의 눈을 사로잡는 건물이 따로 있었으니 바로 일본관이었다.
우리나 일본인에게는 주변에서 흔히 보던 건물이었겠지만 그린 형제를 비롯한 많은 건축가들에게는 놀라움 자체였다. 일본의 전통 사찰 하나를 축소하여 지었다. 중국 건축에서 보이던 과장된 모습보다는 단순화하면서 목구조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그린 형제가 원하던 것은 이런 건물이었다. 한국관도 지어졌지만 지하철역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매점처럼 보였다. 일본관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했다.
1893년 대륙을 건너온 형제는 패사데나에 건축 설계사무소를 열고 인근에 여러 채의 주택을 지었다. 이들은 일본 문화와 예술 공예 운동에 영향을 받았고 가구나 목판화 같은 예술 작업도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그들만의 건축 작업도 해 갔다. 이 중대표작으로 갬블 저택을 꼽는데 별 이견이 없다.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갬블 저택, 일본 문화·예술 공예 운동 영향받은 대표 주택 [LA 유명 건축물 시리즈] 갬블 저택, 일본 문화·예술 공예 운동 영향받은 대표 주택](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6/03/30/20160330110330562.jpg)
도로에서 갬블저택에 들어가는 과정이다. 우리 집은 소중하기에 여러 개의 공간을 거쳐서 들어간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갬블 저택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살펴본다. 건축 관련 법에는 대개 대지의 앞과 뒤에 공지로 비워 둬야하는 셋백(set-back) 규정이 있다. 그래서 앞마당과 뒷마당에는 집을 지을 수 없다. 건물은 중간에만 지을 수있다. 앞마당은 지나가는 사람도 훤히 구경할 수 있어 공적인 성격을 띠고 뒷마당은 집에 가려져서 사적인성격을 갖는다.
집 앞에는 길이 보통 하나 있지만 갬블 저택에는 하나의 길이 더 있다. 그림을 보면 이해가 쉽다. 오렌지 그로브 길이 보통 차가 다니는 길이고, 안쪽에 웨스트 모어랜드라는 샛길을 하나 더 두었다. 그리고 앞마당에 살짝 언덕을 만들어 집과 도로 사이에 위계를 두었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보다 귀한 곳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건축가 김태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geocrow
<
건축가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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